1 <교육제도(유학)- 통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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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8. 22:03 한국사/1 전근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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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7 교육제도 (유학)

1. 고대사회

고구려

귀족중심

문무일치

수도중심

한자사용


태학(국립대학, 소수림, 372)


경당(지방사립대, 장수왕, 427, 평민자제 입학가능, 무술교육)


한학의 발달: 광개토대왕비, 중원고구려비, 을지문덕오언시


백 제


5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한학의 발달: 개로왕이 북위에 보낸 국서, 사택지적비문


신 라


화랑도, 한자 및 이두사용


한학의 발달: 단양적성비, 진흥왕순수비


통 신

국학(신문왕,682): 15~30세 귀족자제(진골,6두품), 9년수학, 논어와 효경(공통과목)

- 유학과 한문학 교육(천문학수학의학법률학 등 과학기술 교육은 따로 교육)


- 충효원리의 유교이념을 보급하여 왕권을 강화하고자 신문왕 2년에 설치


- 예부에 소속, 경덕왕이 태학으로 개칭(한화정책--지증왕도)



독서삼품과(원성왕,788): 우리나라 최초 관리선발 제도, 효경(필수과목)

- 유교경전의 이해수준을 시험하여 능력중심교육의 관리를 채용하여 귀족권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원성왕이 제도화.(과거제 지향)


- 진골귀족의 반발 골품제로 인해 실패(신라하대라 힘없음), but 한문학유학 보급에 이바지

발 해

주자감(문왕, 국립대, 귀족자제를 대상), 발해문자(공식기록은 한자사용)

고 려

태조: 학교(개경서경)학보 

정종: 광학보(승려장학재단)

성종: 국자감

문종: 사학발달 


숙종: 서적포(목판인쇄

예종: 양현고, 7(유학6무학1)

인종: 경사 6(7재의 무학 강예제 폐지


충렬: 섬학전, 경사교수도감

충선: 성균관 공민: 성균관 정비(순수 유교 교육)

 




2. 고려

1) 초기(성종)

교육입국조서의 반포(성종): “교육이 아니면 인재를 얻을 수 없다.”

* 갑오개혁 이후 고종의 교육입국조서 반포(1895) : 국가의 부강은 신민의 교육에 있다.


향교 설치(지방): 유학교육기관, 주요 군현에 설치 *조선은 모든 부, , , 현에 하나씩 설치


국자감(국학)의 정비(설립): 중앙, 귀족자제 대상

비서성(개경), 수서원(서경)이라는 학문연구소의 설치 (*비서성은 분사제도가 아님)


유학부(경학부)는 신분별 입학 국자학(3품이상)태학(5품이상)사문학(7품이상)

기술학부(잡학부)는 교과별 입학 율학서학산학(8품 이하) 유학부 + 기술학부 = 경사6


평민은 국자감에 입학하여 기술학만 학습 = 서민은 국자감에 입학하여 기술학만 학습(유학은 학습X)


국자학(3품이상)과 태학(5품이상)에 입학하는 사람에게는 공음전과 음서제의 특전 부여


산학 이외의 기술교육은 해당관청 담당 조선은 모든 기술교육을(중앙과 지방의)해당관청 담당


향리의 자제는 사문학에 입학하여 유학을 교육받을 수 있음


국립대학은 과학기술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2) 중기 : 사학의 발달

배경 : 지공거가 설립(조선에는 없음)


대표적 : 9재학당 (문헌공도: 최초, 최충이 설립, 사학의 효시) 사학12도의 융성


결과 : 관학(국자감)의 침체, 문벌중시의 풍토 만연





3) 관학 진흥책 : 실패해서 사학이 발달

배경: 사학의 발달(9재학당)에 의한 관학의 침체 침체된 관학의 진흥을 통한 왕권강화의 추진


내용: 국자감×, 9재학당×

숙종: 서적포 설치 목판 활자로 서적간행 활성화 *서적: 공양왕때 주자와 금속활자 인쇄 담당


예종: 국자감 국학(개칭), 국학 내 7재 설치(전문강좌, 강예제에서 무술교육),

양현고(장학재단관학 경제기반강화), 청연각·보문각(도서관 겸 학문연구소)


인종: 향교를 증설, 중앙교육 강화를 목적으로 경사6학 정비(국자학, 태학, 사문학, 율학, 서학, 산학),

김부식의 등용




4) 후기 : 위축된 관학 교육을 다시 진흥 하는 데 힘씀 (* 장학제도: 학보, 광학보, 양현고, 섬학전)


충렬왕 : 섬학전(양현고의 부실을 보충) 설치, 국학이 개칭된 성균감을 성균관으로 개칭

홍사번이 건의한 평민 18사 수용 (위민정치실시), 문묘 재건립(공자 사당), 

경사교수도감 설치(경전과 역사에 능한 교수들을 도감에 소속시켜 7품이하의 하급관리(참하관)를 교수)


공민왕 : 성균관의 부흥(기술학부를 없애고 순수한 유교 교육기관으로 개편하여 유교교육을 강화)

 




3. 조선

1) 초등교육기관: 서당


2) 중등교육기관: 중앙에 4부 학당/ 지방에 서원향교(군현의 인구비례에 따라 정원책정, 교수훈도를 파견)

- 향교: 모든 군현에 설치하여 수령이 관리, 평민입학 가능, 학업우수자 소과의 초시 면제 특혜


3) 고등교육기관: 성균관(태학지, 청금록, 권당)

- 성적우수자 대과 초시면제, 학업성적 300점이상시 관시 응시 기회부여


4) 유학중심교육: 기술학인 잡학은 천시되었고, 무신을 위한 교육시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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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삼품과는 신문왕 때 처음 시행되었다. (2013년 9급 법원직)
2. 독서삼품과는 골품 제도 때문에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는 못하였다. (2013년 9급 법원직)
3. 최치원은 신라 하대의 도당 유학생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었다. (2008년 9급 지방직 상반기)
4. 발해 지식인들은 당의 빈공과에서 당의 지식인보다 우위에 서기도 하였다. (2008년 지방직 7급)
5. 국자감에 서민의 자제가 입학하도록 한 것은 최충이 9재 학당을 설립한 이후의 일이다. (2007년 9급 법원직)
6. 비서성, 보문각은 모두 고려 시대에 도서관 기능을 한 관청이었다. (2010년 서울시 7급)
7. 고려 말에 신진 사대부는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실천적 기능을 강조하였다. (2009년 9급 서울시)
8. 4부 학당은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사서삼경 등을 교재로 삼았다. (2010년 경북교행 9급) 
9. 조선 시대 향교는 중등 교육 기관으로 부, 목, 군, 현에 각각 하나씩 설립되었다. (2010년 9급 법원직)


1. ( X ) 원성왕 4년(788)에 독서삼품과를 시행하였다. 신문왕은 국학을 설치하여 유교 교육을 강화하였다. 
2. ( ○ ) 독서삼품과는 진골 귀족들의 반발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3. ( ◯ ) 최치원은 6두품 출신으로 당의 빈공과에 급제하고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후 귀국하였다. 귀국 후에 시무 10조의 개혁안을 건의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후 은둔 생활을 하면서 저술 활동에 전념하였다. 
4. ( X ) 빈공과는 당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시행한 과거 시험이다. 당의 지식인은 응시하지 않았다. 
5. ( X ) 최충의 9재 학당 설립 이전에도 서민의 자제가 국자감 기술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이 가능하였다. 최충의 9재 학당은 고려 중기인 문종 때 9재 학당을 설립하였다. 
6. ( ◯ ) 비서성은 서적, 문서를 관리한 곳이고, 보문각은 궁중 도서관으로 학문 연구소였던 청연각과 함께 고려 예종 때 만들어졌다. 
7. ( ◯ ) 고려 말에 신진 사대부는 유교적 생활 관습을 정착시키기 위해 소학, 주자가례를 중시하는 등 일상생활과 관계되는 실천에 관심이 많았다. 
8. ( X ) 천자문, 동몽선습, 통감, 사서삼경 등은 서당의 교재들이었다. 4부 학당은 중등 교육 기관으로 소학과 사서오경 등을 교재로 삼았다. 

9. ( ◯ ) 향교는 한양에 있던 4부 학당과 함께 중등교육 기관이었다. 향교는 전국의 모든 고을(부, 목, 군, 현)에 설치하여 성현에 대한 제사, 유생의 교육, 지방민의 교화를 담당하였고, 교수(훈도)는 규모와 지역에 따라 중앙에서 파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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