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문화 예술// 건축, 석탑, 공예, 인쇄, 유네스코 - 통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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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9. 09:21 한국사/1 전근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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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1 전근대 요약] - <서체, 시, 음악--통시적//조선 후기경향성>>>>>>>>



№ 062. 문화와 예술의 발달

삼 국

고구려

패기정열의 사실적 표현중국문화를 비판적으로 수용

백 제

우아세련미중국남조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 but 토착문화를 발전시키지 못함

신 라

소박전통 → 조화미정제미로 발달

삼국이 서로 공통적인 문화를 소유하였으며(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민족문화형성의 토대를 마련

통 일 신 라

섬세 화려조화미와 정제미의 극치민족문화의 기반확립귀족문화불교문화 발달

발 해

고구려 문화를 바탕으로 당문화 수용고구려보다 부드러우면서 웅장건실한 기풍

고 려

귀족문화(세련미)

불교회화

고려청자

금속공예

유불융합

지방호족이 문화의 주인공

문화폭이 넓어짐

공예미술발달

나전칠기,고려자기불교미술

지방문화(투박미)

관촉사석조미륵보살

소박한토기

둔마리고분벽화

운주사석불과석탑(천불,천탑)

조 선

훈구파

자주정신왕조찬양한문학(사장), 설화문학시조문학인물화산수화유행


사림파

경학중시(사장배격문학저하), 패관문학시조가사사림의천시로침체서정적


18~19C

자유로운 문체문학추구양반비판서민문학 발달실학적화풍발달,

진경산수화(18 정선), 풍속화유행서양화법도입(18), 문인화유행(중국화풍)


당 → 

나전칠기(고려시대에는 송으로 역수출), 풍수지리설선명력 등

신라 → 고려

용주사탑산사종부석사소조아미타여래좌상흥국사지석탑현화사7층석탑고달사지승탑

송 → 고려전기

인쇄술(속장경의 조판금속활자는 고려의 독창적), 은입사기술(청동정병청동향로)월정사 팔각9층석탑(다각다층), 대성악(아악궁중음악으로 발전),도자기기술(상감청자는 고려의 독창적) 송 인 은 월정 대 도 ]

원 → 고려후기

화약(최무선화통도감),수시력(역법), 목화(문익점), 아라비아(사라센)

임제종(보우), 송설체(조맹부체),경천사 10층 석탑(라마불교원각사지10층석탑에 영향)농상집요(이암), 성리학(안향), 천산대렵도(공민왕), 분청사기(북방가마기술도입)

석왕사응진전(다포양식성불사응진전심원사보광전) [원화수목아임송경농성천석분 ]


1. 고려의 문화

1) 범종 용주사 종탑산사 종 <= 신라의 영향을 받음


2) 불상 신라보다는 제작 기법이 뒤짐석불과 금동불이 주류

부석사 소조아미타여래좌상 통일신라의 양식고려의 대표적 불상

광주 춘궁리 철불 시기적 특색고려 불상의 전통 양식재료에 있어서 다양함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지역적 특색길목에 거대하게 조성고려초기(광종)

안동 이천동 석불 ------ 왕권강화정책과 관련미적 감각이 뒤진다.

개태사지 석불 입상 -----󰠙


3) 승탑(부도) = 선종의 유행과 관련

고달사지 승탑(팔각원당형): 특이한 형태조형미가 뛰어 남신라하대의 영향을 받음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평면방형) : 우리나라 묘탑 중 최대의 걸작


4) 공예

귀족적불교적(고려후기 혜허가 그린 양류관음도)

미술분야에서 가장 발달(전기이령의 예성강도부전후기사군자중심의 문인화공민왕의 천산대렵도)

고려자기순수비색청자(11C, 고려도경에서 극찬→ 상감청자(12C) → 분청사기(원간섭기~조선초기)

금속 공예불교 도구를 중심으로 크게 발전

• 은입사 수법청동기 표면을 파내고 실처럼 만든 은을 채워 넣어 무늬를 장식하는 것

• 대표작청동 은입사 향로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나전칠기 공예고려시대에 역수출조선시대를 거쳐 현재까지 전해짐

.




103. 건축과 석탑 *참고 024 삼국의 고분


삼국시대


고구려: [고분]적석총(돌무지무덤, 장군총) 토총(횡혈식 석실분, 쌍영총, 무용총)




백 제 : [고분]적석분 횡혈식 석실분(굴식돌방무덤), 전축분(벽돌무덤, 무령왕릉)


[석탑]익산미륵사지석탑(무왕, 현존最古最大 목조형 석탑)

부여정림사지 5층석탑(대당평제비: 당나라의 장수 소정방이 씀. 백제 멸망의 아픔을 간직)




신 라 : [고분]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 천마총)


[석탑]황룡사(진흥왕아비지)  9목탑(선덕여왕--시기 상대끝날때 그후 여자도없다해서 무열왕, 자장--계율종), 분황사 모전석탑(전탑 모방한석탑--자연석을 벽돌로 만듬. 중국은 흙을 구워서 벽돌로 만드는데...그래서 잘 못만듬.), 첨성대(고려에도 있다)




발 해 : [석탑]길림성 영광탑(발해유일의 5층 벽돌탑, 지하에 무덤시설)



통일신라


[고분]횡혈식 석실분(김유신묘성덕대왕릉에 호석 12지신상 조각), 해중릉(문무왕릉, 불교식)



*통일신라전까지 석탑으로 가지 못하고 고구려는 목탑하다 싸그리 없어지고 나머지는 목탑따라하거나 전탑따라하거나...근데 부여정림사지5층석탑은 그나마 잘만듬.

[]높은 기단(2중기단)위 3층탑 유행 ⇒ 

감은사지 3층석탑(통일의 기상--굉장히 큼)(감은사--은혜에 감사한다 문우왕을 감사하며 신문왕이 만듬)


석가탑, 다보탑, 석굴암(751, 인조석굴)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 통일신라 석탑의 전형(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발견. 현존최고 목판인쇄본)(모두 신라중대인 경덕왕(녹읍부활, 문화는 아직 안꺽임) 제작된 것으로 추정)




하대: 구례화엄사4사자 3층석탑양양 진전사지 3층석탑(기단과 탑신에 부조로 불상 조각)----이젠 굉장히 중요


통신(3),백제(5),고려(다각다층) *봉정사대웅전: 다포양식



고려시대


[주심포양식](공포가 많지 않다)(공포자체가 장식있음) - 웅장, 우아, 간소  안동 정사극락전(현존최고 목조건축), 예산 덕사대웅전, 석사무량수전 [봉 부 수]


[포 양식](조선으로 이어짐) - 원간섭기, 화려(원 영향), 장엄 석왕사진전,성불사진전,삼원사광전 [응응보다]




[석탑] - 다각다층 불안정 흥국사지석탑(신라양식계승), 현화사7층석탑(고려의 독틈함--신라영향)


월정사89층탑(송영향--고려전기), 경천사10층석탑(원--고려후기,라마교 영향, 목조건축 양식본뜸)-->조선세조 원각사 10층석탑 영향[라경원]


강릉 객사문: 가장 오래된 최고의 * 현존 최고(最古) 목조건축물은 봉정사 극락전!




조선시대



[건축] 유교,검약,자연,조화미 [15(다양)16(서원)17(사원)18(화성)19(경복궁중건)]

15C


궁궐, 성곽, 성문, 학교 건축; 경복궁, 숭례문, 창덕궁돈화문


무위사극락전해인사장경판전


원각사지10층석탑 (세조, 경천사 계승)


16C

사림


서원 건축(정자,가람(절의 가람배치와 비슷)주택양식 배합.) 경주옥산서원, 안동도산서원


17C

상업

발달

시작


*임란때 활약한 승장의 영향으로 불교위상 높아짐


사원 건축; 금산사륵전, 화엄사 황전, 법주사상전 [팔각미]

불교의 사회적 지위향상과 양반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을 반영


18C

상업

최고조


수원성(거중기, 서양식축성법)--수도 천도하려했음. 군대경비 만드는 토지 대유둔전


군대 평양대동문, 불국사대웅전


산쌍계사안 개암사, 안성석남사 (부농상공인의 지원으로 장식성이 강한 사원건축)


19C


경복궁(근정전경회루)복원, 광화문 복원 건축은 15C


20C

덕수궁석조전(르네상스)



참 고

국보1(숭례문 = 남대문),국보2(원각사지10층석탑),국보3(북한산비) [북한원숭]

보물1(흥인지문=동대문),보물2(보신각종), 보물3(대원각사비) [대보동]

서울의 4대문과 보신각은 오행사상에 의해서 그 명칭이 만들어 졌다.

(,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숙정문)(중앙,보신각)


대한제국


독립문, 덕수궁석조전(르네상스양식), 명동성당(고딕양식)




*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미륵사(전북 익산) (무왕 대, 600~641, 2009.1.19 발견)

사리장엄 또는 사리장엄구는 사리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다중 구조의 용기 및 탑내에 들어가는 각종 공양구 일체를 말한다. 이중 좌평(佐平·백제 16관등 중 제1) 사탁()적덕(() 積德)의 딸인 백제 왕후가 재물을 희사(喜捨)해 가람(伽藍·미륵사)을 세우고 기해년(己亥年·639)에 사리를 봉안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금제사리봉안기는 무왕의 부인이 된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가 미륵사 창건의 중심인물임을 말하는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의 내용과는 배치되어 흥미롭다.

 

* 부석사 무량수전(주심포양식, 팔작지붕), 안동 봉정사 극락전(주심포양식, 맞배지붕)

부석사 조사당(사천왕상과 보살상 벽화), 예산 수덕사 대웅전(모란과 들국화를 그린 벽화)

 

* 법주사 팔상전 17C 불교의 지위향상과 양반지주층의 경제적 성장이 반영된 건축물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5층 목조탑으로 현존하는 탑중 가장 높은 건축물


.





104. 조각공예품의 역사, 불상석등승탑(부도)


삼국시대

(불상)

고구려: 연가7년명 금동여래입상, 금동미륵반가상(삼국공통--통일신라는 아니고)


백제: 서산마애 삼존불상, 금동미륵반가상, 금동대향로


신라: 경주 배리석불 입상,  금동미륵반가상(에영향)


가야: 수레토기, 기마 인물형 토기, 철제갑옷


통일신라


조각: 석굴암(김대성), 만불산(경덕왕), 무열왕릉비, 마애석불(시대적혼란반영), 석굴암본존불





공예: 원사종(성덕왕, 신라범종 중 가장 오래, 現存 最古의 종)>>>상원사 - 나무위키

vs

덕사종(=성덕대왕신종(경덕왕이 성덕왕 기리기위해), 에밀레종,경덕왕이 만들기 시작해서 완성은 혜공왕, 김필혜): 現存最大, 비천상(날아갈거같은 그림)으로 유명--상원사종에도 있다.>>>성덕대왕신종 - 나무위키




석등: 불국사 석등, 법주사 쌍사자 석등, 팔각 원당형을 기본으로 하는 승탑과 탑비유행

*신라하대는 조형미술이 있지만 쇠퇴: 중대인 불국사랑 비교할 수가 없다.


발해


이불(두개부처)병좌(나란히)상(동경): 흙을 구워 만든 전불, 동경에서 발견


발해 석등(상경 용천부)(규모가 큼--고구려영향): 발해 석조미술의 대표, 팔각 원당형의 간석과 그위에 창문과 기왓골 조각



고려시대

타 시대에 비해 특히 공예발달, 통일신라의 불교미술 계승


불상: 신라보다 떨어짐, 불균형무형식자유분방향토적(관촉사석조미륵보상입상이천동석불),

불유행(광주 춘궁리 철불)---소재가 철 

*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좌상(신라양식계승, 고려 대표불상)----이거빼곤 호족특징인 소재가 특이하든지 모양이 특이하든지




부도: 팔각 원당형(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 승탑, 구례연곡사지불 부도, 공주의 갑사부도),

특수형(탑신이 구형인 정토사 흥법국사 실(ㅇ원형)탑, 평면이 사각형인 지광국사 현탑(네모))


*부도(승탑): ()흥법사 염거 화상탑(신라하대) 고달사지 원종대사 부도(고려초) → 지광국사 현묘탑(고려문종) 화암사 무학대사 홍융탑(조선초)





공예품: 범종(신랴양식 계승- 천흥사종, 용주사종, 탑산사종), 나전칠기(통일신라 때 당에서

수입, 고려 때 역수출), 은입사(송에서 유입, 은입사 향로, 송인은월정대도)



조선시대


실용성과 예술성의 조화, 생필품 중심으로 값싼 재료 이용, 소박하고 견고하며 서민적


화각공예 처음으로 등장(15C): 쇠뿔을 잘게 쪼개서 붙이는 공예

 

자기의 발달 순서 [ 순 음 상 l 분 백 청 철 ]

11C

순수청자

(무늬없음)

(비취청자)

비취=옥색


하늘색인 비색의 아름다움과 선을 강조


신라, 발해의 전통기술을 토대로 송의 자기기술을 도입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 송나라 서긍이 고려도경에서 극찬 (*상감X)



11C

()청자


비색청자 표면에 가는 선으로 무늬 음각양각



1213C

(무신기)

감청자

[강부자학감상]


고려의 독창적인 상감기법을 도자기에 활용(나(소라)전칠기(당)은입사기법(송)을 응용)


도요지: 전라도 강진부안, 귀족의 취향에 맞게 화려함()


무신정권 때 전성기(강화 천도때) 원의 북방 가마기술 도입으로 청자 빛깔 퇴조(원의 영향) 분청사기 등장



13C~ 15C

(원간섭기

들어가자마자)

청사기

[붕어]


원의 북방가마기술도입으로 상감청자 퇴조


정형화되지 않으면서 구김살 없는 우리의 멋을 잘 나타냄(물고기)궁중이나 관공서에서 널리 쓰임, 소박하고 안정적 (*민간X)


도요지: 사옹원 분원(경기도 광주경상도 고령)


15C 전성기를 거쳐 16C 중엽이후 백자에 흡수되어 자연적 소멸




16C

(사림)

순수백자

(사림 자신들은 깨끗하다)


16세기부터 세련된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 분청사기의 쇠퇴


고려 백자의 전통을 잇고 명나라 백자의 영향을 받음


깨끗하고 고상한 선비들의 취향과 어울림



1617C

화백자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그려 넣음(대나무, 매화)


백자가 민간(민간과 서민은 구분. 민간은 부농//서민은 옹기)에 까지 널리 사용되면서 본격적으로 발달




17C~18C

사백사

진사백자

산화철의 안료로 다갈색 무늬(철사)붉은색 무늬(진사)를 그린 백자


.


№ 039 고려대장경--

--목판은 한판으로 찍고 vs 금속활자는 글자하나하나---글자 조합방법 세종때 밀랍식으로 개선. 그것이 식자판 조립법. 

-- 식자판 조립법이 되어야 대량인쇄가 가능해짐// 목판은 원래 대량인쇄 가능



1. 대장경 [초속8부흥선거 교 대몽]


1차 대장경(1012~1087)

장경(1073~1096)

2차 대장경(1236~1251)

초조대장경 정장

신편제종교장총록 교장

8만 대장경 재조대장경 고려대장경

격 률 론


거란대비


현종~선종


6000권을 대구부인사


몽고 2차 침입 때 소실


남례사 일부전함

격 률 론 (X)


대각국사 의천(선종 8년에 간행)


불교서적을 모아 편찬(선종관련X)=신편제종교장총록  

대장경목록(불서목록)


흥왕사 교장도감 4700권 인쇄


부인사 있다가 몽고 3차 침입 때 소실


송광사에 일부 전함

격 률 론


몽고침입 시 최우 강화도에 대장도감(본사)남해와 진주에 분사대장도감을 설치하여 조판

강화도 대장도감에서 전담X




수기(대장경의 조판 교정책임자)


강화도 선원사에 보관

강화도에서 조선 초 해인사로 이전

 




2. 금속목판 활자 (활자순서다 초 속 상 팔 )

1) 상정고금예문(1234--무신시기 최우, 대몽항쟁기부전세계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 남아있지않다.)


2) 직지심체요절(1377, 우왕현재 전하는 최고(最古금속 활자본)

백운화상(사료문제)이 역대 스님들의 법어어록 등에서 필요한 내용을 발췌해 청주 흥덕사에서 간행.

- 프랑스 공사가 경매로 가져간것. (약탈해간 의궤랑은 다름)



>>>이것만 고대

3) 무구정광대다라니경(700 ~ 751년 추정목판활자 인쇄물)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탑신부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통일신라 때 불경인쇄본


cf) 태종- 계미자// 세종- 갑인자, 식자판 조립법--대량인쇄


 




№ 040 유네스코 지정유산

세계유산

문화유산


1.종묘(1995년)

2.석굴암과 불국사(1995년)

3.해인사 장경판전(1995년)


4 화성(1997년)

5 창덕궁(1997년)


6.경주 역사 유적지구(2000년)

7.고창, 화순, 강화의 고인돌(2000년)


( 8.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년)  ==>이건 자연유산)


9.조선 왕릉(2009년)


10.한국의 역사마을 : 하회와 양동(2010년)


11.남한산성(2014년)


12.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13.산사, 한국의 산지 승원(2018년)   ※통도사, 부석사, 봉정사, 법주사, 마곡사, 선암사, 대흥사


14.한국의 서원(2019.07.06)

 ※소수서원(경북 영주), 도산서원(경북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옥산서원(경북 경주), 도동서원(대구 달성), 남계서원(경남 함양), 필암서원(전남 장성), 무성서원(전북 정읍),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9곳.




참고) 북한(고구려고분군*경복궁X


자연유산


제주화산섬과 용암동굴


복합유산



무형유산


종묘제례제례악판소리강릉단오제영산제제주칠머리당영등굿남사당놀이처용무강강술래가곡(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곡을 붙여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는 전통 음악)대목장(전통 목조 건축의 최고 책임자), 매사냥(매를 훈련시켜 야생의 먹이를 잡는 기술)


기록유산


훈민정음조선왕조실록직지심체요절승정원일기팔만대장경과 제경판,

조선왕조의 의궤동의보감



※ 조선왕조의궤는 태조 때부터 만들었으나현재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선조의인왕후 장례기록을 남기기 위해 편찬된 [의인왕후산릉도감의궤와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이다.


※ 북한 지역에 있는 후릉과 경기도 여주의 영릉강원도 영월의 장릉을 제외하면 실제 모든 왕릉이 서울 사대문으로부터 100리 이내에 조성.

신의왕후의 제릉과 정종과 정안왕후의 후릉폐위된 연산군 묘광해군 묘는 문화유산 등재 제외


※ 가곡그냥 '노래'라고도 한다현재 전하는 가곡은 남창 26여창 15곡 등 41곡으로중요무형문 화재 제30호로 지정됐다김영기조순자김경배 씨가 예능 보유자이다.


※ 대목장글자 그대로는 나무를 다루는 장인의 우두머리란 뜻이다우리나라에서는 나무 장인을 목장,목공목수으로 불렀다이런 목장 가운데 건축과 관계된 일을 대목이라 하며그 일을 하는 장인을 대목장이라 했다중요무형문화재 74호로 지정됐으며광화문 복원을 맡았던 신응수 씨를 비롯해 최기영전흥수 씨가 기능 보유자로 지정돼 있다.


※ 매사냥주로 겨울에 사냥이 이뤄진다개인보다는 팀 단위로 하는데꿩을 몰아주는 몰이꾼(털이꾼)매를 다루는 봉받이매가 날아가는 방향을 봐주는 배꾼으로 구성된다. '시치미 떼다'는 말은 매사냥에서 유래된 것으로매 주인이 자기 매임을 나타내기 위해 붙이는 이름을 시치미라 한다.

소뿔을 갈아 5㎝ 정도의 조각에 주인 이름을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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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29-2 인쇄술, 제지술, 금속 기술과 무기 제조, 병서

1. 금동 대향로, 칠지도,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모두 같은 나라 사람들이 만든 예술품이다. (2010년 경북교행 9급)

2. 불국사 석가탑에서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초에 제작된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물이다. (2008년 국가직 7급)

3. 송의 판본은 고려의 목판 인쇄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2009년 국가직 9급)

4. 고려는 몽골과 전쟁 중이던 시기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주조하여 상정고금예문 을 인쇄하였다. (2010년 9급지방직)


주제 29-2 인쇄술, 제지술, 금속 기술과 무기 제조, 병서 OX 정답 및 해설

1. ( ? ) 금동 대향로는 신선 세계 또는 불교의 연화장 세계를 형상화한 향로로,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되었다. 칠지도는 근초고왕이 왜왕에게 하사했다고 전해지는 6개의 가지가 달린 칼이다. 정림사지 5층 석탑은 부여에 있으며 세 가지 모두 백제인이 남긴 예술품이다. 

2. ( X ) 금속활자는 고려 시대에 발명되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불국사 3층 석탑의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것으로, 현재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이다. 

3. ( ? ) 고려와 송은 경제적·문화적인 교류가 활발하였는데, 특히 송의 판본은 고려의 목판 인쇄 발달에 영향을 주었다. 

4. ( ? )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상정고금예문?은 1234~1241년 사이에 인쇄되었다. ?상정고금예문?은 원래는 12세기 의례서인데, 최우가 강화도로 천도할 때 가지고 오지 못하자 금속활자로 다시 인쇄하였다고 한다. 고려는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 이래 1270년 강화로 천도하기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몽골의 침입에 항전하고 있었다.

 




주제 30-5 공예 기술의 발달(토기 · 자기 · 공예)

1. 세종 시기 상감법을 개발하여 자기 제작에 활용하였다. (2013년 9급 법원직)

2. 15세기의 선비들은 일반적으로 분청사기를 쓰고, 집에 가묘를 세웠다. (2009년 지방직 7급)

3. 분청사기는 조선 전기 지배층 사이에서는 관심 받지 못했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4. 분청사기는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었고 다채로운 안료를 사용하였다. (2008년 선관위)

5. 분청사기가 주로 생산된 시대에는 건국 초기 독자적인 연호(年號)를 사용하기도 하였다. (2009년 7급 지방직)

6. 조선 후기에는 분청사기가 전국의 자기소와 도기소에서 널리 만들어졌다. (2013년 9급 법원직)

7. 조선 시대의 백자는 실용과 검소를 표방하였고, 사대부의 고아한 풍치와 선비로서의 정신이 표현되었다. (2010년

9급 기상직)

8. 조선 후기에는 실용과 검소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기풍으로 인하여 순백자와 분청사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2011년 지방직 9급)

9. 조선 시대의 공예는 생활용품이나 문방구 등에서 특색 있는 발달을 보였다. (2010년 9급 지방직)



주제 30-5 공예 기술의 발달(토기· 자기· 공예) OX 정답 및 해설

1. ( X ) 고려 시대에 대한 설명이다. 고려 초에는 순수청자가 유행하였으나 12세기 중엽에는 상감법(조각칼로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을 음각한

후 그 홈에 붉은 흙이나 흰 흙을 감입)이 발달하였다. 세종 때에는 분청사기가 유행하였다. 

2. ( ? ) 분청사기는 고려 말에서 15세기까지 사용된 도자기이고, 가묘는 조선 시대부터 많이 세웠다. 

3. ( X ) 분청사기의 그림이나 문양이 고려 시대 도자기에 비해 단순해졌지만, 이 도자기도 지배층이 사용한 도자기였다. 

4. ( X ) 분청사기는 조선 초기에 유행하던 도자기로 민간에까지 널리 사용되었지만 다채로운 안료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다채로운 안료를 사

용한 것은 백자이다. 

5. ( X ) 분청사기는 고려 말부터 제작되기는 하였으나, 주로 생산된 시대는 조선 시대를 가리킨다. 조선 시대에는 중국의 연호를 따라 썼다. 건국 초기에 독자적인 연호를 쓴 나라는 고려이다. 

6. ( X ) 조선 초기의 일이다. 분청사기는 분청회청사기(紛靑灰靑沙器)의 준말이다. 청자에 백토의 분을 칠한 것으로 백색의

분과 안료로 무늬를 만든 자기이다. 

7. ( ? ) 조선 시대의 백자는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제작되었다. 이 도자기는 주로 조선 사대부들에 의해 사용되었고, 실용과 검소를 표방

하고 선비 정신을 표현하였다. 

8. ( X ) 분청사기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유행하다가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되면서 사라져갔다. 순백자는 16세기 이후 유행하였다. 17~18세기에는 백자 위에 여러 가지 안료로 그림을 그린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백자 등이 많이 만들어졌다. 

9. ( ? ) 조선 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검소와 절제를 중시하여 사치스러운 공예품보다는 실생활에 이용되는 생활필수품이 발달하였다. 또 시, 서를 짓기 위한 문방구가 함께 발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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