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세도정치, 삼정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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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9. 09:19 한국사/1 전근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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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3 세도정치

1. 세도정치의 배경

1

2

순 헌 철

19C~

자율적붕당

타율적 붕당정치 탕평책()

세도정치

선초~17C

17~19 C(경신환국때 원리붕괴)

매관매직,민란

 

2. 시기 : 19세기 전반기 [순조(안동김씨) ~ 헌종(풍양조씨) ~ 철종(안동김씨)]

정조(18c이후) 세도정치의 전개(1800~1863) 흥선대원군의 정치

세도정치(63년간) ← ❘ → 구한말(근현대사, 세도정치 이후)

 

3. 전개

1) 정순왕후의 수렴청정기: 정조 승하 후 순조(11)가 즉위하자,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수렴청정

노론 벽파가 다시 정국의 주도권 장악. 이들은 신유박해(1801)를 일으켜 정조가 규장각을 통해 양

성한 인물들을 대거 제거함. 또한 장용영을 혁파하고 5군영을 부활시켜 이를 장악.

2) 정순왕후가 죽자 김조순(안동 김씨)은 반남박씨와 풍양조씨 등 유력 가문의 협력을 얻어 정국을 주도

3) 순조 말년 효명세자가 대리청정을 통하여 척신 세력을 제거하고 정권을 장악하려 했으나 급사로 실패

4) 헌종 대에는 풍양 조씨 가문이, 철종 대에는 다시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세도정치가 전개

5) 흥선 대원군이 정국을 주도하면서 세도 정치가 혁파됨

 

4. 세도정치의 권력 구조

1) 중앙 정치를 주도하는 정치 집단은 소수 가문의 출신으로 좁아지면서 그 기반이 축소

2) 폐쇄적 정치 집단의 형성: 비변사를 통한 정2품 이상의 고위직만이 정치적 기능을 발휘

3) 왕권의 약화: 비변사의 권력 집중(세도 가문 출신이 차지), 의정부와 6조 체제는 유명무실해짐

 

5. 세도정치의 폐단(19C 사회의 모습)

1) 관리의 수탈, 매관매직의 성행 = 수령자리의 매매(수령자리의 상품화), 삼정의 문란(전정군정환곡)

2) 총액제, 부세의 도결화(전세 외에 군포환곡의 이자 등을 군현단위로 토지에 부과하여 화폐로 징수)

3) 지배층은 고증학에 치우쳐 개혁의지 상실, 일당전제화마저 부정하고 특정가문이 권력을 독점

4) 상품화폐경제의 성장 둔화(조선후기는 상품화폐경제가 성장, 세도정치에서만 둔화)

5) 백성의 저항: 홍경래의 난(1811)과 임술 농민 봉기(1862)

6) 역관들은 직업적 특수성을 이용하여 부를 축적

7) 정치적, 사회적으로 혼란기였지만, 서민문화는 전성기

8) 정부의 시책: 삼정이정청 설치 암행어사 파견 실패 민란발생(소청벽서운동) 왕권약화

 

 .

 

 

094. 삼정문란과 민란발생

1. 삼정의 내용 (조세의 전세화, 토지단위로 조세부과)

- 전정: 영정법(4) + 훈련도감 삼수미세(2.2) + 대동법(12) + 균역법(결작 2) 20.2

- 군정: 군역의 대가로 1인당 군포 1(균역법)

- 환곡: 춘대추납으로 1할의 이자를 가산

 

2. 삼정문란 (15C 전정, 167C 공납, 18C 군역, 19C 환곡문란 극심)

전정

은결(대장에없는 땅에 징세), 진결(황무지에 징세), 도결(정액이상), 백지(空地에 징세)

군정

족징(친족) 인징(이웃), 강년채(나이를 줄여), 백골징포(死者), 황구첨정(어린애) 마감채(일시불)

환곡

늑대(강제대여), 탄정(흉년감액부분까지) 반작(허위문서), 가분(저축분량까지) 허류, 입본

 

3. 민란 발생

발생 원인

신분제동요 세도정치부패 수취체제모순(총납제, 공동납부제등)

농민의식성장 벌열양반(권반)>토반(향반)>잔반(몰락양반)

민란 전개

홍경래의난(1811.순조): 19c(민란의 선구적 역할)

진주민란(=임술민란,1862,철종):19c(전국적 확대) 개경민란

민란

결과

암행어사, 삼정이정청(1862)설치 실패

농민자위수단조직

항조거세운동 도적, 화전민

 

4. 적극적인 농민의 항거

1) 벽서(벽에 낙서), 괘서(행운의 편지) -> 탐관오리의 비방과 폭로

2) 거세(세금거부), 항세, 농민항쟁(가장 적극적)

3) 소청, 벽서, 괘서 등을 통한 농민의 항거 실패 후 나타난 것

 

5. 농민봉기(민란): 신분해방의 추진×, 정권탈취의 시도×, 동학의 영향×, 조선 왕조를 부정×

1) 주장 : 탐관오리의 척결, 삼정의 시정, 토지제도의 개혁

2) 홍경래의 난(몰락양반), (순조, 1811) : 최초, 최대, 김사미 효심의 봉기와 비슷, 지역감정 등,

몰락양반이 주체, 고려시대의 강동6(거란의 1차 침입시 서희가 차지)와 지역이 일치함.

- 홍경래의 격문: “~평안도 놈이라 말한다.~”지역차별이 원인

- 평안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는 중국과의 사무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나친 간섭과 착취

- 홍경래 등 몰락양반과 이희저우군칙 등 금광과 홍삼밀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한 자들이 주도하여 장기간 난을 준비

- 외척세도정치의 모순에 대한 반발, 몰락양반이 주도.(체제 유지가 아닌 반체제 입장, 전국적봉기X)

3) 임술농민봉기(=1862년 농민봉기=백건당의 난)

- 주도계층은 요호 부농층과 양반 토호층, 즉 주체는 농민이었고 몰락양반들도 가담

- 단성에서 시작 진주(진주민란으로 촉발) 전국(북쪽의 함흥~남쪽의 제주에 이르기까지 확산)

- 조세수취 관계의 모순을 시정 하려는게 목표, 벽서·소청 등 소극적인 운동을 병행

- 경작 규모의 영세화로 자영 농민의 몰락 현상이 두드러졌다

- 정감록의 예언 사상과 미륵 신앙이 체제를 변화시킬 사상으로 이용되었다

- 정부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농민봉기의 주도자를 처벌(민심악화원인)하였다

- 서울로의 진격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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