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역사, 선사시대>-------------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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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4. 18. 21:51 한국사/1 전근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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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01 역사서술의 두 경향

1. 객관적 측면의 역사(일제강점기에 들어옴⇒ 事實 객 사 랑 ]

1) 사실로서의 역사과거에 실제 있었던 사실시간적으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모든 과거

2) 랑케역사가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오직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하라.

3) 이병도실증주의 사관진단학회

4) 역사가의 임무는 사실을 정확히 기록하는데 있다자신의 시대정신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2. 주관적 측면의 역사 ⇒ 史實

1) 기록으로서의 역사조사되어 기록된 과거탐구하여 획득한 지식역사가가 주관적으로 재구성

2) 이에치 카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역사가는 자신의 생각으로 사실을 만든다.

3) 크로체콜링우드토인비신채호박은식 등 민족주의 사학과 관련

4)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이다(신채호), 역사는 만인과 만인의 투쟁이다(토인비)

기타 역사관

1. 토인비의 순환주의적 역사관역사를 문명의 생성과 소멸의 반복과정으로 파악

2. 헤겔의 관념론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역사관역사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법칙에 따라 발전한다

역사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 모두를 강조

3. 막스의 유물론에 입각한 진보주의적 역사관역사발전의 원동력은 관념이 아닌 물질의 변화임.

 

3. 한국사의 보편성과 특수성

단일민족 국가로서의 전통효 사상두레등 공동체 조직 발달세형동검잔무늬거울 제작상감청자금속활자의 발명불교문화의 호국사상과 현세구복적 신앙삼국시대 귀족회의한글

보편성백남운사회경제사학⇒ 유물 ↔ 관념(민족주의) / 보편 ↔ 정체성론

 

4. 사료비판

내적비판사료의 내용이 신뢰할 만한 것인가를 분석하고 사료의 성격을 밝히는 작업

외적비판사료의 형식이나 그 자체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

 

주제 1 역사란 무엇인가?

1. 역사의 의미에서 사실로서의 역사는 시간적으로 현재까지 일어난 모든 과거의 사건을 말한다. (2010년 서울시 9급)

2. 랑케는 역사가는 자신을 숨기고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고 보았다. (2008년 지방직 9급)

3. 과거에 일어난 수많은 사실(事實)은 역사를 연구하는 새로운 사료(史料)라고 한다. (2006년 국가직 9급)

4. 역사가는 대중을 위한 역사를 만들고자 적당한 윤색을 가한다. (2006년 국가직 9급)

5. ‘사실로서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역사가는 자신을 숨기고 역사적 사실로 하여금 말하게 해야 한다. (2008년 지방직9급)

6. 역사의 주관성을 강조한 측면에서 볼 때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불교 관련기사가 거의 없다. (2009년 국가직 9급)

7. ‘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되면 안 된다. (2010년 지방직 9급)

8. “궁예와 견훤의 흉악한 사람됨이 어찌 우리 태조와 서로 겨룰 수 있겠는가?”라는 사실로서의 역사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2010년 지방직 9급)

9. 사료와 역사적 진실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므로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 (2010년 9급 지방직)

추가 문제10. 우리 역사의 특수성을 보여 주는 것으로, 전근대 사회에서 신분제 사회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들 수 있다.(2008년 국가직 9급)

주제 1 역사란 무엇인가? OX 정답 및 해설

1. ( ◯ ) 사실로서의 역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모든 사건들을 의미한다. 

2. ( ◯ ) 역사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보았던 사람은 카(E. H. Carr)이다. 랑케는 역사를 과거에 있었던 사실만을 봐야 한다고 하였다. 

3. ( X ) 사료란 과거의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 사실이 남긴 흔적에 해당되며 역사가는 이 사료를 통해 과거 사실에 접근할 수 있다. 형태상으로는 문헌사료, 비문헌사료(구비전승, 유물)로 나누거나 사건과 동시대에 제작된 1차적인 사료와 후대의 역사가들이 정리해놓은 2차 사료로 구분할 수 있다. 

4. ( X ) 기록으로서의 역사라는 측면에서나 사실로서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역사에 윤색을 가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다. 

5. ( ◯ ) ‘사실로서의 역사’에서는 역사가의 주관적 해석을 배제하고 과거에 일어났던 사실 그 자체를 중요시한다. 

6. ( ◯ ) 김부식은 유학자로서 의도적으로 불교 관련 기록을 싣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7. ( X ) 기록으로서의 역사란, 수많은 과거의 사실들 중 역사가가 선택하여 연구하고, 일정한 의미를 부여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따라서 기록으로서의 역사에는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주관이 개입된다. 

8. ( X ) 궁예와 견훤을 태조와 비교하고 있는 것은 기록자의 주관적인 시각이 가미된 것이다. 따라서 제시된 문장은 사실로서의 역사가 아니라 기록으로서의 역사 기록에 해당한다. 

9. ( ◯ ) 사료 없이는 역사 기록이 존재할 수도 없고, 역사 해석도 가능하지 않다. 사료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나 기록자의 주관이 사료를 기록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사료 비판이 필요하다. 

10. 추가문제 ( X ) 근대 이전 시기에 신분제 사회가 형성된 것은 지역과 시대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국가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역사의 보편성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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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사회 발전 단계설 (국가발전 3단계설)

성읍국가 (군장국가)

연맹국가 (초기국가)

중앙집권국가 (고대국가)

청동기 문화

철기문화

철기문화

고조선옥저동예삼한의 소국

가야삼한(목지국), 부여위만조선

고구려백제신라

 

왕 X (부족장 개념)

선민사상

 

왕 O (선출제)

왕권미약(군장세력 )

사출도(5부족연맹체)

관료조직은 존재

흉년수해시 귀족들이 왕에게

책임을 물음

 

왕 O (세습제형제 → 부자상속)

왕권강화(군장세력 )

족장세력의 중앙귀족 흡수

율령반포 ⇒ 신분제 복제 마련

불교수용

영토확장(한강)

중국과 항쟁

지방관 파견




№ 002 선사시대 구분 (~ 006)

구 분

구 석 기

(70~1만년)

중 석 기

(~ BC.80C)

신 석 기

(~ BC.20C)

청 동 기

(~ BC. 5C)

철 기

(BC 5c, AD 1c ~)

유적지

천성승만두상수석

(전국구석에 12)

최 홍 만 부 임

고 동 오 암 남 수 지

(강가나 바닷가)

오 초 미 흔 송

(전국에 걸쳐 다수)

 

토 기

인골화석승만두상

양면주먹도끼연천전곡

X

X

이른민무늬토기

덧무늬 토기

빗살무늬토기

압인문토기

덧띠새김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미송리식토기

붉은간토기

중국식 회도

덧띠토기

김해식(가야)토기

검은간토기

주 거

형 태

+동굴

 

해안강가(수변생활)

움집+동굴

 

(원형,방형,중앙에화덕)

내륙에 집단취락

야산의 구릉지

움집+지상가옥

(사각,장방형,한쪽에화덕)

귀틀집초가집

온돌구조

배산임수

산성거주

석 기

뗀석기

잔석기(세석기)

간석기

간석기

 

유 물

주먹도끼 팔매돌

슴베찌르개 찍개

찌르개 새기개

긁개 밀개(조리용자르개

톱 낫 활 작살

이음도구

뼈바늘 가락바퀴(방추차)

갈돌갈판(조리용)

돌괭이돌보습

비파형동검(북방계통)

거친무늬거울(조문경)

홈자귀 반달돌칼

고령양전동 암각화

울주반구대 암각화

세형동검(마한지역

영산강금강유역)

잔무늬거울(세문경)

거푸집

명도전

경 제

사냥 채집 어로

토끼 여우 등 사냥 채집 어로

초기사냥 어로

농경목축시작

농경발달

벼농사시작(BC8)

(중국에서전래) *만주X

농업혁명

*世界最古 볍씨

청원소로리 발견

농 사

기 구

X

X

조 피 수수 기장

돌괭이 돌보습

보리  

반달돌칼 홈자귀

벼농사 발달

철제(청동X농기구

철제무기(청동기의기화)

무 덤

X

X

토장묘(웅기굴포리서포항 동침앙와신전장)

고인돌 돌널무덤

돌무지무덤

널무덤

독무덤(=옹관묘)

신 앙

주술적 신앙(선각화)

(수양개 석장리)

 

원시신앙

(애니미즘샤머니즘)

선민사상

제정일치(단군왕검)

제정분리(소도)

국 가

형 태

무리사회

(무리사회)

씨족부족사회

군장(성읍)국가

초기연맹국가

후기고대국가

사 회

평등사회

이동생활

평등사회

이동생활

평등사회

부족사회

정착생활(집단취락X)

족외혼(폐쇄적)

족장(군장)사회

분업사회(집단취락O)

가부장적사회

사유재산계급발생

친족공동체사회

사유재산

계급분화 심화

민 족

기 원

한반도 최초거주

해빙기 겪음

우리민족의 기원

민족의 기틀마련

우리민족의 주류

 

일 본

영 향

조몽 토기

야요이 문화

가야스에키토기

삼국아스카문화

통신하쿠오문화

기 타


※ 한민족韓族 예맥족(조선족부여족*漢族 X


※ 동방문화권요령길림을 포함하는 만주지역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에 넓게 분포하여 중국의 문화권과는 다른 독특한 것이 특징[요만한]



유적지 정리 *


∘ 단양 금굴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最古)

* cf. 한반도 최고의 신석기 집터 유적지양양오산리 (덧무늬토기 발견)


 공주 석장리해방 후 남한에서 발견된 최초의 구석기 유적(전기~후기)


∘ 종성 동관진일제 강점기(1933)에 발견된 최초의 구석기 유적지일본학자들은 인정 X


∘ 인골 화석덕천 승리산만달리유적청원 두루봉(흥수아이장례흔적), 단양 상시리(남한최초), 제천 점말동굴역포 대현동


∘ 선각화(주술적신앙): 단양 수양개공주 석장리 *cf.암각화 X


∘ 암사동 선사유적지

- 1979년 726일 사적 제267호로 지정서로 다른 시기의 문화층이 발견

맨 밑에 층에서 신석기 유물 발견두 번째 층에서 신석기 유물과 청동기 유물이 동시에 출토맨 위층에는 백제의 유적도 발견 , but 고인돌 출토X


∘ 황해도 봉산 지탑리평양 남경 유적탄화된 좁쌀 발견 ⇒ 신석기 시대 후기의 농경 흔적


∘ 경기도 여주 흔암리충남 부여 송국리탄화미 발견 ⇒ 청동기 시대의 벼농사 흔적중국에서 전래


∘ 제주 한경면 고산리 유적: 신석기 시대를 BC 6천년에서 BC 8천년으로 앞당김한반도에서도 구·신석기

시대가 자연스럽게 연결됨을 입증. * 청동기 시대를 500~1000년 앞당겨 BC 2천 ~ BC 1500년에 한반도 청동기 시대가 본격화 된 사실을 입증하는 유물은 덧띠새김무늬토기


∘ 암각화울주 반구대(고래짐승 등 사냥감), 울주 천전리(1암각화-사냥감2암각화-기하무늬), 고령양전동 알터(○ △ 기하무늬), 칠포(국내 최대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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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2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

1. 우리나라와 그 주변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이다. (2012년 경찰 간부 후보)

2.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2009 서울시 9급)

3. 처음에는 찍개 같은 도구를 가지고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으나 점차 뗀석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용도가 뚜렷한 작은 석기들을 만들었다. (2012년 경찰 간부 후보)

4. 쐐기 등을 대고 형태가 같은 여러 개의 돌날격지를 만들어 사용했을 시기에는 동굴과 막집에 살면서 채집과 사냥을 하였다. (2008년 서울세무직 9급)

5. 주먹도끼, 찍개, 팔매돌 등은 사냥 도구이고 긁개, 밀개 등은 대표적인 조리 도구이다. (2012년 경찰 간부 후보)

6. 구석기 시대에는 강가나 해안가에 집단으로 생활하였다. (2011년 해양경찰)

7. 구석기 시대에는 농경, 목축이 시작되었다. (2011년 해양경찰)

8.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서울 암사동, 충남공주 석장리 등이 있다. (2012년 경찰 간부 후보)

9. 구석기 시대의 상원 검은모루 동굴, 연천 전곡리 등이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2009년 서울시 9급)

10. 신석기 시대에는 채집과 사냥을 주로 하며 동굴이나 막집에서 살았다. (2013년 9급 법원직)

주제 2 우리나라의 선사 시대 OX 정답 및 해설

1. ( ◯ ) 우리나라에 구석기시대가 시작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이다. 이는 약 70만 년 전부터 한반도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2. ( ◯ ) 구석기 시대는 돌을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눌 수 있다. 

3. ( ◯ ) 전기에는 주먹도끼 등 한 개의 석기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사용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격지를 손질하여 만들었기 때문에 크기가 작아지고 특정한 용도에 적합하도록 분화되었다. 밀개, 긁개, 찌르개, 자르개 등이 있다. 

4. ( ◯ ) 석기를 제작하는 방법도 세련되어져서 쐐기 등을 대고 형태가 같은 여러 개의 돌날격지를 만들었던 때구석기 시대 후기로, 이때의 주거 형태는 동굴과 막집이며, 채집과 사냥이 주된 식량 공급 방법이었다. 

5. ( ◯ ) 주먹도끼는 짐승을 사냥하고 가죽을 벗기며 땅을 파서 풀이나 나무뿌리를 캐는 등 여러 가지 목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찍개는 나무를 자르거나 뼈를 부스러뜨릴 때, 적과 싸울 때 등에 사용한 만능 석기이다. 

6. ( X ) 구석기 시대 사람들은 동굴이나 바위그늘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강가나 해안가에 산 것은 신석기 시대이다. 

7. ( X ) 구석기 시대에는 아직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지 않았다. 농경과 목축은 신석기 시대에 시작되었다. 

8. ( X ) 서울 암사동 유적지는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이다. 

9. ( ◯ )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유적은 60~4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베이징 원인과 동시대의 유적이다. 이곳에서 주먹도끼, 긁개 등이 발견되었다. 

10. ( X ) 구석기 시대에 대한 설명이다. 

11. 신석기 시대는 무리 중에서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평등 사회였다. (2010년 국가직 9급)

12. 신석기 시대의 부족은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을 기본 구성단위로 하였다. (2010년 국가직 9급)

13. 신석기인들부터는 도구를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불을 이용하고 언어를 구사하였다. (2012년 서울시 9급)

14. 이른 민무늬 토기를 사용하였을 때는 원형이나 네모 모양의 움집을 짓고 살았다. (2008년 서울세무직 9급)

15. 신석기 시대에는 빗살무늬 토기와 가락바퀴가 제작되었다. (2013년 지방직 9급)

16.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이지만 이보다 앞선 시기의 토기도 발견되고 있다. (2010년 국가직 9급)

17. 신석기 시대에는 움집 중앙에 있던 화덕이 한쪽 벽으로 옮겨지고, 저장 구덩도 따로 설치하였다. (2011년 국가직 9급)

18. 평안남도 온천 궁산리에서 나온 뼈바늘을 통해 직조 사실을 추정해 볼 수 있다. (2010년 지방직 9급)

19. 부산 동삼동 유적, 제주도 한경 고산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에서는 청동기 시대의 덧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2008년 지방직 9급)

20. 서울 암사동 유적, 봉산 지탑리 유적, 김해 수가리 유적에서 신석기 시대의 빗살무늬 토기가 출토되었다. (2008년 지방직 9급) 

11. ( ◯ ) 신석기 시대까지는 계급이 없는 평등 사회였다. 

12. ( ◯ )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같은 핏줄을 가진 씨족끼리 모여 살았는데, 이러한 씨족은 족외혼을 통해 다른 씨족과 연결되었고, 몇 개의 씨족이 모여 부족을 이루었다. 각 씨족은 생활 구역이 정해져 있고, 다른 씨족의 생활 구역을 침범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13. ( X ) 구석기 시대에 도구를 사용하고, 불을 이용하였으며, 언어를 구사하기 시작하였다. 

14. ( ◯ ) 이른 민무늬 토기가 사용된 때는 신석기 시대이고, 이 시대에는 원형이나 네모 모양의 움집을 만들어 사용하였다. 

15. ( ○) 신석기 시대에는 실을 뽑는 가락바퀴와 바닥이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가 제작되었다. 

16. ( ◯ ) 이른 민무늬 토기(무늬가 없는 토기), 덧무늬 토기(덧띠를 붙인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눌러 찍은 무늬가 있는 토기) 등이 사용되었다. 이런 토기는 제주도 한경 고산리, 경남 고성 문암리, 강원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에서 발견되었다. 

17. ( X ) 신석기 시대의 움집은 바닥이 원형이나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이다. 움집의 중앙에는 불씨를 보관하거나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였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를 저장하였다. 화덕이 한쪽 벽으로 옮겨진 것은 청동기 시대이다. 

18. ( ◯ ) 가락바퀴(방추차)와 뼈바늘(골침)이 출토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옷이나 그물을 만들어 사용하였음을 알 수있다. 가락바퀴는 섬유에 꼬임을 주어 실을 만드는 가장 오래된 도구로 신석기 시대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19. ( X ) 부산 동삼동 유적, 제주도 한경 고산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여기서 이른 민무늬 토기, 무늬 없는 토기, 덧무늬 토기, 덧띠를 붙인 토기, 눌러찍기무늬 토기, 눌러 찍은 무늬가 있는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덧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덧띠새김무늬 토기와 다른 것이다. 

20. ( ◯ ) 제시된 유적은 모두 신석기 시대의 유적지이다. 이 외에도 부산 동삼동 유적, 제주 한경 고산리 유적, 양양 오산리 유적 등이 대표적인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꼽힌다. 

21.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나온 조개껍데기 가면을 통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의 예술활동 양상을 엿볼 수 있다.(2010년 지방직 9급)

22. 황해도 봉산 지탑리에서 나온 탄화된 좁쌀을 통해 농경 흔적을 알 수 있다. (2010년 지방직 9급)

23. 신석기 시대에는 주로 강을 끼고 있는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살았다. (2007년 세무직 9급)

24. 신석기 시대에는 전문적인 기술자와 사유 재산 제도가 나타났다. (2009년 법원직 9급)

25. 신석기 시대에는 명도전 등을 사용하여 중국과 활발하게 교류하였다. (2009년 법원직 9급)

21. ( ◯ ) 강가나 해안가에 살던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굴, 홍합, 대합 등 조개류도 채취하여 먹었는데, 깊은 곳에 사는 조개류를 따서 장식으로도 이용하기도 하였다. 이 시대 사람들이 남긴 조개더미가 웅기 굴포리, 부산 동삼동 등에서 발견되었다. 부산 동삼동 패총에서 발견된 얼굴 모양의 조가비는 작은 구멍 두 개를 뚫어 눈을 만들고 큰 구멍 하나를 뚫어 입을 만든 것이다. 

22. ( ◯ )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이 시작되었다 해도 주로 조, 피, 수수 등의 작물을 재배하였다. 황해도 봉산 지탑리와 평양 남경의 유적에서 발견된 것은 탄화된 좁쌀로서 신석기 시대에 잡곡류를 경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23. ( X ) 신석기 시대에는 거주지가 주로 강가나 바닷가에 있었다. 야산이나 구릉 지대에 거주지를 마련한 때는 청동기 시대이다. 

24. ( X ) 전문적인 기술자가 나타나고 분업이 이루어지며, 사유 재산 제도가 나타난 때는 청동기 시대이다. 25. ( X ) 명도전은 철기 시대에 접어든 중국 춘추·전국 시대에 연나라와 제나라에서 사용한 청동화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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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 청동기, 초기 철기 문화

1.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 유적인 고인돌은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다. (2006년 9급 국가직)

2. 민무늬 토기가 발견된 유적에서 벼를 재배한 흔적이 나왔다. (2007년 9급 국가직)

3. 여주 흔암리 유적지, 부여 송국리 유적지, 서천 화금리 유적지에서는 공통적으로 철제 농기구가 발견되었다.(2010년 국가직 7급)

4. 반달 돌칼과 고인돌이 나타났던 시기에 한반도 북부 지역 사람들은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를 사용했다.(2010년 법원직)

5. 청동기 시대가 되면서 이전에 돌로 만든 농기구가 점차 청동으로 만든 농기구로 바뀌었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6. 청동기 시대에 사용된 민무늬 토기, 미송리식 토기는 모두 표면에 무늬가 없었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7. 울주 반구대 암각화에는 사슴, 고래, 거북, 물고기, 호랑이, 멧돼지, 곰 등 동물의 모습과 사냥 장면, 배와 어부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생)

8. 청동기 시대에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010년 법원직)

9. 초기 철기 시대에는 주거지가 하천이나 바닷가에서 구릉지로 이동하였다. (2013년 9급 기상직)

10. 초기 철기 시대에는 널무덤과 독무덤 등이 만들어졌다. (2013년 9급 기상직)

11. 초기 철기 시대에는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 붉은 간 토기 등을 사용하였다. (2013년 9급 기상직)

12. 철기 시대에는 출입구 시설이 붙은 ‘여(呂)’ 자형 주거가 등장하였다. (2011년 지방직 9급)

13. 철기 시대에 부뚜막이 등장하였다. (2011년 지방직 수탁

주제 3 청동기, 초기 철기 문화 OX 정답 및 해설

1. ( ◯ ) 고인돌은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고인돌로 나뉜다. 우리나라에서 분포하는 지역을 따라 탁자식 고인돌은 북방식, 바둑판식 고인돌은 남방식이라고도 부른다. 개석식 고인돌은 전국적으로 분포한다. 

2. ( ◯ )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로 이 시기에 일부 저습지에서 벼농사를 지었다. 청동기 시대의 유적에서 발견된 탄화미가 벼를 재배한 흔적이다. 

3. ( X ) 여주 흔암리 유적지, 부여 송국리 유적지, 서천 화금리 유적지는 공통적으로 탄화미가 발견된 곳이다. 이 유적을 통해 청동기 시대에 벼농사가 발달했음을 알게 되었다. 

4. ( ◯ ) 반달 돌칼과 고인돌은 모두 청동기 시대의 유물, 유적이다. 비파형 동검과 미송리식 토기는 만주와 한반도 북부에 분포하는 청동기 유물이다. 

5. ( X ) 청동의 재료인 구리는 귀한 금속이었기 때문에 주로 지배층의 무기나 장신구로 사용되었고, 청동기 시대에도 농기구는 이전의 신석기 시대와 마찬가지로 돌로 만든 농기구를 썼다. 대표적인 청동기 시대의 농기구로 반달 돌칼이 있다. 

6. ( X ) 민무늬 토기는 표면에 무늬가 없지만 미송리식 토기는 몸체에 집선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7. ( ◯ ) 울주 반구대(대곡리) 암각화에는 여러 동물 모습과 사냥 장면, 배와 어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8. ( X )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것은 애니미즘이다. 애니미즘, 샤머니즘, 토테미즘과 같은 원시 신앙은 신석기 시대에 나타났다. 

9. ( X ) 주거지가 하천, 바닷가에서 구릉지로 이동한 것은 청동기 시대이다. 

10. ( ◯ ) 초기 철기 시대에는 고인돌, 돌널무덤 등이 점차 없어지고 널무덤, 독무덤 등의 무덤이 만들어졌다. 

11. 민무늬 토기(無文土器 : 무문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토기이며 신석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와 구분하기 위해 이른 민무늬 토기라고 한다. 덧무늬 토기(隆起文土器 : 융기문토기)는 신석기 시대, 붉은 간 토기는 신석기와 청동기 시대에 사용된 토기이다. 

12. ( ◯ ) 여(呂) 자형 주거는 부뚜막과 함께 철기 시대에 나타났다. 부뚜막은 아궁이가 발달된 형태이고, 여(呂) 자형 주거는 두 개의 직사각형이 붙어 있는 여(呂)자 형태이다. 두 가지 특징으로 철기 시대의 가옥이 이전 시대의 것보다 규모가 크고 좋은 시설임을 알 수 있다. 

13. ( ◯ ) 철기 시대에 온돌을 쓰는 초가집이 나타나면서 주거시설에 부뚜막이 등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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