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이자겸의 난, 묘청의 난, 무신정권>
№ 052.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 무신 정권기 (~№ 055)
□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 무신정권 쟁탈전 [정 경 이 최 - 중방 도방 중방 도방]
□ 무신정권기 사회의 동요 [ 이묘정서 보조귀 반무신의난~ 소전김최 만진동수 이년의 난~ ♬ ]
1. 이자겸의 난(1126) : 세도정치와 비슷 1) 배경: 폐쇄적인 혼인관계, 경원이씨 세력의 족벌정치, 이자의의 난, 이자겸 등 측근세력의 성장 2) 경과: 이자겸은 척준경과 함께 반대하던 한안인 등 왕의 측근세력을 제거 → 인종과 측근세력의 반발 3) 이자겸의 정책: 대내적으로 문벌중심의 폐쇄적 정치 질서 유지. 대외적으로 금과 타협 도모 4) 결과: 이자겸+척준경(청주) → 척준경+인종 → 이자겸 제거 / 인종+정지상 → 척준경 축출 - 서경 출신 귀족의 대두: 이자겸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개경파 귀족세력 가운데 김부식을 중심으로한 경주 김씨 세력의 대두 ↔ 척준경 제거 공로로 정지상 등을 중심으로 승려 묘청과 백수환 등의 서경 출신 신진 관료가 주요 인물로 등장 5) 의의: 문벌귀족사외의 붕괴를 촉진하는 계기 2.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 1) 배경 ① 고구려 계승 이념에 대한 이견과 갈등, 서경길지설 대두, 보수(김부식)와 개혁(정지상)의 갈등 ② 개경파의 주장: 유교 정치 이념에 충실, 민생안정을 내세워 금과 사대관계를 수용 ③ 서경파의 주장: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여 자주사상과 유교사상 결합, 사회적 폐단을 지적하여 개혁정치 추구, 서경 천도 주장, 국왕을 황제라 칭할 것, 독자적 연호사용 주장(칭제건원론), 금국 정벌론 주장 2) 경과 ① 서경에 대화궁 건립 (* 대조영 - 천통, 왕건 - 천수) ② 묘청의 난(1135): 국호를 대위(국), 연호를 천개, 군대이름을 천견충의군이라 하여 난을 일으킴 ③ 김부식이 이끄는 진압군은 정지상ㆍ백수한 등의 천도파를 죽이고 서경으로 진격하여 1년만에 모두진압 3) 결과: 숭문 천무 현상 강화(무신정변의 배경), 서경의 지위 하락(분사제도 폐지) 4) 평가: 풍수지리설이 결부된 자주적 전통사상과 유교정치사상의 충돌, ※ 장안국: 신라하대 김헌창의 난 때 일시건국 ※ 정안국: 발해 부흥운동 시 열만화가 건국
. 3. 무신정권(1170~1270) : 문무합작정권 1) 경과: 이의방(중방) → 정중부(중방) → 경대승(도방) → 이의민(천민출신, 중방) → 최충헌 → 최우 ⑴ 최충헌의 집권(1196~1219) ① 도방의 부활: 신변의 경호, 사병.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 ② 교정도감 설치: 반대세력 제거 목적 → 국가 최고 기구로 발전, 장관인 교정별감은 최씨가 세습 ③ 봉사 10조의 제시: 최충헌이 제시한 사회 개혁안 - 내용 : 귀족들의 불법적 토지 겸병과 승려의 고리대업 금지, 조세 제도 개혁 - 결과 : 사회개혁은 흐지부지 되고 최충헌은 더욱 많은 토지와 노비를 차지. 흥녕부 설치(국가내의 국가조직, 경상도 진주일대의 식읍을 소유, 농장관리기구) ④ 조계종을 후원함 ⑵ 최우의 집권(1219~1249) ① 정방의 설치: 인사권의 장악 → 공민왕 때 폐지 ② 서방의 설치: 문신들의 숙위 기구. 문학적인 소양과 함께 행정 실무 능력을 갖춘 문신 등용 ③ 마별초와 야별초를 조직하여 치안을 강화 ④ 삼별초의 조직: 도방과 함께 최씨 정권의 군사적 기반 ⑤ 무신기 대몽항쟁 : 강화도로 천도, 상정고금예문 다시 제작(1234) 하였으나 소실, 팔만(재조)대장경 조판 ⑶ 최한, 최의, 김준 등: 최씨 정권이 몰락한 이후에도 일정기간 무신정권은 지속됨. 2) 특징, 결과, 영향 - 문벌귀족사회의 붕괴 ⇒ 권문세족의 등장, 신진사대부의 등장 - 개혁이 없음 - 문신의 우대, 과거제도의 실시(문과) *무과× - 선종(조계종)의 발달 - 패관문학과 시조문학의 발달(한문학의 발달): 현실 도피적이며 낭만적인 문학 발달 - 최씨 정권 이후 무신 정권에 타협적인 사대부가 등장 - 농장의 확대 ⇒ 전시과의 붕괴 3) 사회의 동요 ⑴ 반무신 난 [보조귀] ① 김보당의 난(문신): 의종 복위운동 ② 조위총의 난(무신, 서경유수): 서북지방인들의 반란 ③ 귀법사 교종승려의 난 ⑵ 천민·노비들의 난의 전개 ① 전주 관노의 난(노비가 최초로 참가한 난) ② 만적의 봉기(최충헌의 사노): 신분해방과 정권탈취의 시도(개경), 최초로 노비가 주체
⑶ 농민전쟁(양인들의 난) ① 망이·망소이의 봉기(공주 명학소의 난): 향·소·부곡이 군현으로 승격되는 계기(명학소 → 충순현 승격) 농민 항쟁적 성격과 신분 해방적 성격의 복합 ② 김사미(운문)·효심(초전)의 봉기: 경상도 전역 장악, 무신 집권기 최대 규모의 민란, 지역감정의 문제, 홍경래의 난과 비슷(1811). 신라부흥을 표방 ⑷ 왕조질서의 부정(삼국의 부흥운동): 김사미ㆍ효심의 봉기(운문ㆍ초전, 신라부흥운동), 최광수의 봉기(서경, 고구려 부흥운동), 이연년의 봉기(전남담양, 백제의 부흥운동) |
.
========================================
주제 13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동요
1. 경정 전시과가 시행될 시기에는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 가문인 경원 이씨가 성장하였으며, 이후 경원 이씨인 이자겸이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2013년 9급 기상직)
2. 최승로는 도읍을 옮겨 혁신 정치를 시행하고자 하였다. (2012년 서울시 9급)
3. 묘청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으로 도읍을 옮겨, 자주적인 혁신 정치를 시행하려고 하였다. (2010년 경북교행 9급)
4. 문벌 귀족은 관직에 상관없이 선악과 공로에 따라 토지를 지급받았다. (2010년 지방직 7급)
5. 최충헌은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 기구로 교정도감을 설치하였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6. 최충헌은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7. 최충헌은 마별초와 삼별초를 조직하여 무력 기반을 크게 확충하였다. (2012년 경찰간부후보)
8. 무신 집권기에 민중은 옛 삼국의 부흥을 표방하면서 봉기하기도 하였다. (2009년 지방직 9급)
9. 무신 집권기에 천민들은 대몽 항쟁기에 저항 세력으로 나서기도 하였다. (2009년 지방직 7급)
10. 무신 집권기에 동명왕편이 지어졌다. (2012년 서울시 9급)
11. 무신 집권기에 향·부곡·소를 일반 행정 구역으로 바꾸었다. (2012년 서울시 9급)
주제 13 문벌 귀족 사회의 성립과 동요 OX 정답 및 해설
1. ( ○ ) 문종 때부터 경원 이씨 가문이 문벌 귀족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이자겸의 난은 고려 인종(재위 1122∼1146) 때인 1126년(인종4)에 일어났다.
2. ( X ) 천도를 통한 혁신 정치를 주장한 사람은 고려 중기의 묘청이다.
3. ( ◯ ) 묘청 세력은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서경(평양)으로 도읍을 옮겨, 보수적인 개경의 문벌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면서 자주적인 혁신 정치를 시행하려 하였다. 이들은 서경에 대화궁이라는 궁궐을 짓고, 황제를 칭할 것[稱帝建元 : 칭제건원]과 금을 정벌[征金論 : 정금론]하자고 주장하였다.
4. ( X ) 문벌 귀족은 성종 이후 중앙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며 형성된 새로운 지배층으로, 관직에 따라 과전을 받았고 세습이 가능한 공음전도 지급받았다. 관직과 관계없이 선악과 공로에 따라 토지를 지급한 것은 태조 때의 역분전이다.
5. ( ◯ ) 교정도감은 최충헌이 반대 세력을 제거할 목적으로 설립한 기구로 관리에 대한 비위 규찰(糾察)ㆍ인사 행정 및 재정권까지 담당하는 등 국정을 총괄하는 최고 정치 기구였다. 이후 무신 정권 내내 최고 권력 기구로 기능하였다.
6. ( X )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최고 권력 기구인 교정도감(최충헌 때 설치)을 통해 정치권력을 행사하는 한편, 자신의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인사권을 장악하였다. 정방의 설치로 모든 관리의 임명은 최씨 정권과 연관된 인사들로 국한되었으며, 이는 왕권의 급격한 약화를 가져왔다.
7. ( X ) 삼별초는 최우 때 수도의 치안 유지를 위해 창설한 야별초(夜別抄)에서 시작되었다. 야별초가 좌별초와 우별초로 분리되었고, 이후 대몽 항쟁 과정에서 몽골에 포로로 잡혔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신의군(神義軍)이 편제되어 삼별초가 성립되었다.
8. ( ◯ ) 김사미·효심의 난(1193)은 운문, 초전에서 일어난 농민 봉기로 신라 부흥을 표방하였다. 최광수는 서경에서 고구려 부흥 운동을 표방하며 난을 일으켰고(1217), 이연년은 담양에서 백제 부흥을 표방하며 난을 일으켰다(1237). 모두 무신 집권기에 일어났다.
9. ( ◯ ) 대몽 항쟁기는 최우가 집권하였을 때부터 무신 정권이 붕괴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 시기에 관노들이나 부곡민 등 천민들이 몽골에 대한 저항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0. ( ◯ ) 무신 집권기 때 일부 문인들이 관직에 등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이규보, 이인로, 최자 등이 최우 집권기에 활약한 대표적 문인이었다.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었다.
11. ( X ) 무신 집권기에 향·부곡·소 등의 특수 행정 구역이 일반 행정 구역으로 바뀐 사례는 1176년에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 때 이들이 살았던 명학소가 충순현으로 승격된 것 외에는 없었다. 그러나 고려 후기 이후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점차 소멸되고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었다.
'한국사 > 1 전근대 요약' 카테고리의 다른 글
2 <고려와 조선의 화폐제도-통시적> (0) | 2017.04.18 |
---|---|
4 <고려 농업과 농서 정리- 통시적>>>>>>> (0) | 2017.04.18 |
4 <고려 문화- 사관의 흐름 / 삼국사기 유사 (역사서)>>>>>>> (0) | 2017.04.18 |
4 <고려의 유학과 성리학 & 예학ㆍ보학 >>>>>>> (0) | 2017.04.18 |
1 <- 원 간섭기><충선왕 공민왕 개혁정치> (6) | 2017.04.18 |
4 <- 중세불교 - 조계종과 천태종>>>>>>>>>> (0) | 2017.04.18 |
1 <고대 중세 군사제도> (0) | 2017.04.18 |
1 <고려의 대외항쟁> (0) | 2017.04.18 |
2 <고려 경제, 무역> (0) | 2017.04.18 |
2 < >>고려 토지제도> (0) | 2017.04.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