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 한말 애국계몽ㆍ독립단체
1905년 을사조약 이후 민족 2대 운동 | | | | | (좌 | 파) | | (우 | 파) | 독립전쟁론 - 의병전쟁 - 무력투쟁 - 생존권사수 - 양기탁, 이동휘 | | 애국계몽운동 - 국권회복 - 실력양성 - 산업,교육 - 안창호 중심 | |
스티븐스死 | 이토死 | 이완용 | 사이토 | 종로서 | 일왕궁성 | 동ㆍ척 | 일 왕 | 시라카와 | 1908 | 1909 | 1909 | 1919 | 1923 | 1924 | 1926 | 1932 | 1932 | 장 | 전 | 안 | 이 | 강 | 김 | 김 | 나 | 이 | 윤 | 장인환 | 전명운 | 안중근 | 이재명 | 강우규 (실패) | 김상옥 | 김지섭 | 나석주 | 이봉창 | 윤봉길 | 의열단 | 애국단 |
의열단(1919): 3.1운동이후 개별적 폭력투쟁. 만주에서 김원봉(신흥무관학교 출신)이 조직, 파괴와가살의 행동목표를 지침 ⇒ 신채호‘조선혁명선언’강령- 민중.혁명.폭력 김상옥(23, 옥이 있는 종로경찰서)ㆍ나석주(26,(주)동척)ㆍ김지섭(24,황궁이중교)ㆍ김익상(21,총독부폭파) ----------->폭탄던지니 한계를 느낌. 그래서 중국시스템배우러 황포군관학교 들어감. 그리고 조선혁명간부학교 세움.
애국단(1926): 임정이 계속위기 후 최후로 던진카드 상해에서 김구가 조직, 한ㆍ중양국의 우의증진과 일본요인 암살 목적, 독립노선의 갈등 으로 인한 임시정부침체를 극복하기위해 조직 만주사변후--이봉창(실패)--상하이사변--윤봉길(32,중국국민당의 지원 강화 → 한국 광복군 창설) |
연도 | 명칭 | 지역 | 인물 특징 | 1896 | 독립협회 | 서울 | 서재필ㆍ남궁억 ⇔ 황국협회 | 1904 | 보안회 | 서울 | 송수만ㆍ원세성, 황무지개간 철회성공, 농광회사(이도재) [황보] | 1905 | 헌정연구회 | 서울 | 일진회에 대항, 입헌군주제 수립과 민권확대 주장 [ㅇㅈㅎ] | 1906 | 대한자강회 | 대한민보발해, 고종퇴위 반대운동 [자퇴] | 1906 | 대한협회 | 대한자강회+대한구락부 → 친일변질 | 1907 | 신민회 | 서울 | - 안창호ㆍ양기탁등 ⇔ 105인사건 - 최초공화주의주장, 비밀결사, - 대한매일신보(기관지) 대성학교(평양)ㆍ오산학교(정주)ㆍ태극서관(대구)ㆍ자기회사(평양),→ 흥사단(LA) → 수양동우회로 발전(26) | 1909 | 국민회 | 미국 | 이승만 신한민보발행, 한인합성협회+공립협회, 대한인국민회로 발전 | 1910 | 성명회 | 연해주 | 유인석ㆍ이상설 광복의 그날까지 피의 투쟁을 다짐, 한일합방의 부당성 비판(일왕에게 편지) | 1910 | 경학사 | 삼원보 (=서간도) | 이상룡, 경제적 자립을 위한 민단, 부민단 → 한족회로 발전 * 신흥강습소(백서농장) → 신흥무관학교(독립군양성기관) | 1911 | 중광단 | 북간도 | 서일, 대종교단체, 대한정의단 → 북로군정서(김좌진) | 1911 | 동제사 | 상하이 | 신규식, 상해유학생조직 | 1912 | 독립의군부 | 전국적 | 임병찬(최익현과 다르게 대마도에서 도망쳐온), 고종의 밀지(고종의 반환요구서제출/어이없게→거절당하자 의병전쟁계획), 복벽주의(전제군주제 회복), 비밀결사 국권반환 요구서 제출 → 거절 당하자 의병전쟁 계획 | 1913 | 대한광복단 (풍기광복단) | 만주 | 채기중 주도
박상진ㆍ김좌진, 공화주의, =1915 조선(대한)광복단(회) 군대식으로 조직, 만주에 독립군 사관학교설립(독립군간부양성)--친일부호 찾아다니며 의연금 or 처단
==> 향후 조선국권회복단 일부와 합류해서 대한광복회로 발전 | 1914 | 대한광복군정부 | 연해주 | 이상설ㆍ이동휘, 독립전쟁을 준비한 최초의 국외정부, 공화주의 권업회가 모체, 노령정부로 불림, 임시정부수립의 계기 제공 | 1915 | 조선국권회복단 (대한광복회) | 대구 | 서상일ㆍ이시영, 단군신앙을 바탕, 시회로 가장
-->대한광복회로 발전(1915, 대한광복단+조선국권회복단) 오인은 대한의 독립된 국권을 광복하기 위하여 오인의 생명을 희생함에 공함은 물론.. 국권을 회복하기까지 절대 불변하고 일심육력할 것을 천지신명에게 서고함 | 1917 | 신한혁명당 | 상하이 | 신채호ㆍ박은식, 대동단결선언, 공화주의, 임시정부수립 주장 | 1918 | 신한청년당 | 상하이 | 김규식ㆍ여운형ㆍ김구, 파리강화회의 김규식파견 <독립청원서> ⇒ 실패 | 1919 | 대한국민의회 | 연해주 | 손병희, 정부수립선언, 이후 상해 임시정부로 통합 |
복벽주의: 대한제국(봉건질서) 회복 ⇒ 민단조합, 대한독립의군부, 대한독립단 [임신복]
공화주의: 왕정X, 민주정(국민주권) ⇒ 신민회(최초주장), 대한광복단, 신한혁명당, 임정(실현) ----->신민회와 대한광복회 느낌 비슷
조소앙의 삼균주의: 균부(국유제)ㆍ균권(보통선거)ㆍ균학(공비교육)의 평등강조 무오독립선언서(1919, 만주), 임시정부의 대한민국 건국강령(1941, 충칭) |
3.1 운동이후 국내 무장단체: 구월산대(1920,황해도) 천마산대(1919,평북의주) 보합단(1919,평북의주) |
- 이들까지 합법으로 해줄순 없음. 게릴라전이라.. 불법
북만주: 밀산부의 한흥동(최초의 독립운동 기지, 이상설ㆍ이승희)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신한민촌), 경학사→부민단→한족회→서로군정서(공화주의)ㆍ대한독립단(복 (신민회활동) 벽주의),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육군주만 참의부
북간도(만주길림): 용정촌(서전서숙, 이상설), 명동촌(명동학교, 서일), 간민회→대한국민회→국민회군(안무), 대한독립군(홍범도, 군무도독부(최진동), 중광단(서일) → 대한정의단 → 북로군정서(김좌진)
상하이: 동제사 → 신한혁명당 → 신한청년당, 대동보국단(시베리아 간도 국내의 연락기능)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 한민회(해조신문, 한민학교), 성명회, 권업회, 13도의군, 대한광복군정부, 대한 국민 의회 (연 해 주), 신민단, 경비대, 혈성단
미 국: 대동보국회(1945, 신규식, 박은식), 한인합성협회+공립협회=대한인 국민회(미 국)(신한민보발행), 흥사단(1913,안창호,LA,[동광]잡지발행), 공립협회(안창호,SF), 신민회(하와이,1903, 홍승하ㆍ윤병구 중심, 동족단결ㆍ민지개발ㆍ국정쇄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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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3. 신민회와 독립군 기지건설, № 144. 신간회
신민회(1907~1911) | 신간회(1927~1931) | • 카멜레온 단체 • 비밀(항일)결사 단체
• 목표: 공화정체 국권회복과 독립 자주 국가 건설 * 최초 민주공화제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이다
• 구성: <대한매일신보> 중심의 구국단체. 다양한 세력참여, 엄격한 심사를 통한 입회 허용(안창호,이동녕,김구,신채호,양기탁)
• 이념 :‘선실력 후기회론’ • 4대 강령(신민회 활동목표) ① 민족의식과 독립사상을 고취시킬 것 ② 동지를 발견하고 단합하여 역량을 축적할 것 ③ 교육기관을 각지에 설치하여 청소년 교육 진흥 ④ 상공업기관을 만들어 단체의 재정과 부력 증진
• 활동 - 기관지: <대한매일신보> 국채보상운동 참여(후원) 기관잡지: 최남선의 주도 하에 <소년> 간행
- 대성학교(평양,안창호)ㆍ오산학교(정주,이승훈), 양산학교(안악) [ 안대 이오 ]
- 민족산업의 육성:자기 제조 주식회사(평양), 태극서관(평양ㆍ서울ㆍ대구,국민계몽),협성동사
- 삼원보(신한민촌, 신흥강습소): 이동녕, 이회영
- 안악사건(1910)을 데라우치 총독 암살음모 사건(1911)으로 확대, 105인 사건을 계기로 조직 와해 →서간도에 독립군 기지 건설시도 좌절
- 애국 계몽 운동이 항일 의병 운동과 연대하는 계기 마련, 3·1운동 이후 독립군 부대에 의한 항일무장투쟁의 기초가 마련.
- 해외의 독립군 기지건설 주력
• 후신: 흥사단(LA,안창호,1913) | •“신간출고목”이라는 말에서 취하여 명칭을 정함
• 합법적 단체로 승인 (→합법과 비합법노선 사이의 모순) (20년대는 합법이 많음)
• 창립배경: 자치운동론대두, 중국의 제1차 국ㆍ공합작, 북경촉성회 창립, 조선민흥회 조직, 정우회 선언, 6ㆍ10만세운동, 코민테른의 승인
• 민족유일당, 민족협동전선을 목표로 합법적 단체로 승인받으면서 일제치하 최대의 항일 단체로 발전
• 구성: 자치운동을 배격하고 비타협적 민족주의와 (이상재, 안재홍) 사회주의가 결합하여 결성
• 조직: 1929년 전국 144개의 지회 설치. 일본까지 확대.
• 3대 강령 (후에 수정발표: 민족운동을 위한 보다 적극적인 활동노선을 제시) ① 우리는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진함 ② 우리는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함 ③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함
• 활동 (중앙: 비타협적민족주의, 지회: 사회주의) ① 항일 운동의 전개 -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진상 조사단 파견 - 갑산 화전민 학살 사건 진상 규명 운동 - 원산총파업(1929)ㆍ단천농민투쟁(1930) 지원 ② 청년, 여성, 형평 운동과도 조직적으로 연계 ③ 민중 대회와 연설회 개최(광주학생운동 도중)
• 신간회 해체(1931.5.15): 자진해산 - 본부가 자치론자들과 제휴를 주장하는 등 우경화경향을 보이자 해소론 등장 - 9월테제에서 코민테른은 일제와 타협하는 개량주의적 단체로 규정하여 해산을 종용 - 최초로 개회된 신간회 전국대회에서 해소가 결의 * 좌우합작(1920년대) 민족유일당촉성회, 신간회, 전국연합진선협의, 건국동맹, 상해촉성회(27), 조선청년동맹(1924),조선민흥회, 근우회, 국민부, 북경촉성회(26) |
민족주의(우익) - 우파: 자치론ㆍ타협론ㆍ기회주의ㆍ실력양성 →이광수, 송진우 - 좌파: 반자치ㆍ비타협ㆍ절대독립→ 안재홍, 권동진 사회주의(좌익)- 무정부주의 → 박헌영, 김일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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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1. 한민족의 해외이주
북만주: 밀산부의 한흥동(최초의 독립운동 기지, 이상설ㆍ이승희)
서간도(남만주): 삼원보(신한민촌), 경학사→부민단→한족회→서로군정서(공화주의)ㆍ대한독립단(복 (신민회활동) 벽주의),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육군주만 참의부
북간도(만주길림): 용정촌(서전서숙--최초의 국외학교, 이상설), 명동촌(명동학교, 서일), 간민회→대한국민회→국민회군(안무), 대한독립군(홍범도), 군무도독부(최진동),
중광단(서일) → 대한정의단 → 북로군정서(김좌진)
상하이: 동제사 → 신한혁명당 → 신한청년당, 대동보국단(시베리아 간도 국내의 연락기능)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의 신한촌, 한민회(해조신문--해삼위의 조선신문, 한민학교), 13도의군, --국권피탈 후-- 성명회, 권업회, 대한광복군정부(최초의 국외정부, 1914), 대한국민의회, 신민단, 경비대, 혈성단
미 국: 대동보국회(1945, 신규식, 박은식), 한인합성협회+공립협회=대한인국민회(신한민보발행), 흥사단(1913,안창호,LA,[동광]잡지발행), 공립협회(안창호,SF), 신민회(하와이,1903, 홍승하ㆍ윤병구 중심, 동족단결ㆍ민지개발ㆍ국정쇄신) |
1. 생활터전을 찾아 만주와 간도로 1) 1910년대: 일제의 토지국유화정책과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업에 의해 토지 잃고 이주(북간도 용정촌) 항일운동 전개ㆍ독립운동기지 건설(남만주 삼원보, 북만주 한흥동) 2) 1920년대: 독립군의 항일무장 투쟁, 간도참변(1920) 3) 1930년대: 만주국 성립으로 만주개발을 위한 조선인 강제 이주
2. 연해주와 중앙아시아 1) 1905년 이후: 러시아 변방개척위해 조선인의 연해주 이주 허용, 한인 집단촌 형성(원호인) 2) 1910년대: 13도 의군 결정, 대한광복군 정부(블라디보스톡), 대한국민의회(1919)(손병희), 권업회, 성명회 러시아 혁명 이후 볼세비키 군대와 연합하여 항일투쟁 전개 3) 1920년대: 자유시 참변→ 민족운동 약화 4) 1930년대: 소련 당국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1937년)
3. 일본 이주 1) 19C 말: 일본의 선진학문을 배우기 위한 유학생 이주 2) 1910년대: 산업 노동자로 취업(노동착취, 민족차별) 3) 1920년대: 관동대학살(1923) 4) 1930년대: 전시 동원 정책에 의해 강제 징용→ 현재 재일동포 사회구성의 토대
4. 미주 이주 (현재 재미동포는 100만명으로 이주동포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다.)
5. 우리 민족의 인구분포 일제 강점기 | 1910년 | 1313만명 (이천만 넘는 시기: 30년을 전후로) | 1930년대 후반 | 중일전쟁 후 강제연행으로 해외 이주자 급증 | 1943년 | 2439만명 | 해방직후 | 해외의 귀환 인구는 주로 남한에 집중되어 인구 압력을 가중 | 한국전쟁 | 1955년부터 1960년까지 남한에서 베이비붐 현상이 일어나 인구 급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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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회영: (경부신)- 경학사(발갈며 공부하자), 부민단, 신흥강습소->신흥무관학교.
- 중간에 서명 북간도 - 중광단(대종교계열), 간민회, 서전서숙(헤이그간 이상설),-->명동학교
- 연해주(헤이그갔다온 이상설) : 석명회(소리내서 울다), 권계민 권업회, 계동학교, 한민학교// 러시아는 정치적자유가 좀 있기에.....대한광복군정부(이상설, 이동휘-한인사회당;좌파)// 대한국민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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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38-1 국내 항일 운동의 전개
1.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조선 공산당이 조직되었다. (2008년 지방직 9급)
2. 정우회 선언은 신간회 결성의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지방직 7급)
3. 좌우 협력 운동의 양상이 확대되어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되었다. (2011년 해양경찰)
4. 신간회는 창립과 함께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라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2006년 국가직 9급)
5. 신간회는 무력 투쟁을 통한 민중적 조선 건설을 주장하였다. (2008년 서울세무직 9급)
6. 신간회는 만주에 무관학교를 세우고 국외 독립운동 기지 건설에 힘을 기울였다. (2008년 지방직 7급)
7. 신간회는 일제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철회시켰다. (2011년 서울시 9급)
8. 신간회는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민중 대회’를 열어 항일(抗日) 열기를 확산시키려고 하였다.(2012년 일반순경)
9. 신간회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자극받아 서울에서 민중대회를 개최하였다.
10. 신간회는 원산 노동자 총파업을 지원하였다.
11. 신간회는 비합법 단체로서 노동쟁의와 소작쟁의를 지원하였다. (2012년 지방우정청)
12. 신간회, 근우회가 조직되었던 시기에 일제는 황국 신민 서사 암송, 창씨개명 등을 강요하였다. (2011년 기상직 9급)
주제 38-1 국내 항일 운동의 전개 OX 정답 및 해설
1. ( ? ) 1920년대에는 사회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청년 운동, 소년 운동, 여성 운동과 농민·노동 운동, 형평 운동 등이 활성화되었고, 1925년에 조선 공산당이 조직되었다.
2. ( ? ) 정우회는 코민테른의 결정에 따라 계급 운동의 대중화와 통일 전선 운동 등을 내세우며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연합할 것을 천명하였고, 신간회 결성(1927)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3. ( ? ) 신간회는 1920년대 이른바 문화 통치하에서 자치론 등 개량적 흐름이 나타나자 이를 기회주의로 규탄하며 성립된 좌우 합작 단체이다.
4. ( ? ) 신간회는 자치 운동을 주장하는 타협적 민족주의자를 배격하기 위해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는 강령을 발표하였다.
5. ( X ) 신간회는 한국인에 대한 착취 기관 철폐, 타협적 정치 운동 배격,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사회과학 및 사상 연구의 자유 보장 등을 주장하였다.
6. ( X ) 신간회는 대중 조직으로 주로 국민들에 대한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7. ( X ) 신간회는 민족 단결, 정치적·경제적 각성 촉구, 기회주의자 배격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일제의 황무지 요구 개간권 철회는 1904년 보안회의 활동이다.
8. ( ? ) 신간회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으며, 민중 대회를 개최하여 사건을 확대하려 하였지만 실패하였다.
9. ( X ) 신간회는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을 확산시키기 위해 민중 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일제에 검거되어 개최되지는 못하였다.
10. ( ? ) 신간회 원산 지회는 원산 노동자 총파업에 적극 개입하여 이를 지원하였다.
11. ( X ) 신간회는 합법 단체이다.
12. ( X ) 신간회와 근우회는 일제의 문화 통치 시기에 조직되었다. 황국 신민 서사 암송, 창씨개명 등은 일제가 민족 말살 통치 때에 우리 민족에게 강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