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급 서울시 한국사 문제 정답 및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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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5. 23. 08:32 한국사/00 기출 정답 해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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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시 9급 한국사 해설 문동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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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간섭기 고려의 국가체제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① 고려 전체가 몽골의 직할지로 편입되었다.

② 정동행성의 승상은 몽골의 다루가치가 전담하였다.

③ 관제격하의 일환으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첨의부로 통합되었다.

④ 대막리지가 집정대신으로서 국정을 총괄하였다.

1. 정답 ③

[정답 해설]

③ 원간섭기에는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합쳐 첨의부로 하고, 6부는 4사로 통폐합되었으며, 중추원은 밀직사로 격하되었다.

[오답 피하기]

① 원간섭기에 고려 전체가 몽골의 직할지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3총관부(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지역이 원의 직할지로 편입되었다.

② 정동행성의 장관인 승상은 고려왕이 겸임했다.

④ 대막리지는 고구려의 행정과 군사권을 장악한 최고 관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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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기>는 대한제국 시기의 국권 피탈과 관련된 사건이다. 이를 시간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보기>

ㄱ. 일본은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ㄴ. 일본은 대한제국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간섭하였다.

ㄷ. 대한제국은 재정과 외교 부문에 일본이 추천하는 외국인 고문을 두게 되었다.

ㄹ. 고종은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보내 억울함을 호소하려고 하였다.


① ㄱ→ㄷ→ㄴ→ㄹ     ② ㄴ→ㄷ→ㄱ→ㄹ

③ ㄷ→ㄱ→ㄹ→ㄴ     ④ ㄹ→ㄷ→ㄱ→ㄴ

2. 정답 ③

[정답 해설]

ㄷ. 러·일 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일본은 1904년 8월 제1차 한·일 협약을 체결하여 외교와 재정 분야에 외국인 고문을 두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재정 고문으로 일본인 메가타를, 외교 고문으로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임명하였다.

ㄱ.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늑약을 체결하여 외교권을 박탈하고 1906년 2월 통감부를 설치하였다.

ㄹ. 고종은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국제 사회에 알리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회 만국 평화 회의에 이위종, 이상설, 이준을 특사로 파견하였다.(1907년 6월)

ㄴ. 일본은 1907년 7월 한·일 신협약(정미 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여 한국 정부의 각 부에 일본인 차관을 두어 내정을 장악하였으며, 군대마저 해산(1907. 8)시켰다.







3. <보기>의 밑줄 친 ‘왕’ 대에 이루어진 내용을 옳게 고른 것은?


<보기>

재위 19년에는 금관국주인 김구해가 비와 세 아들을 데리고 와 항복하자 왕은 예로써 대접하고 상등(上等)의 벼슬을 주었으며, 23년에는 처음으로 연호를 칭하여 건원(建元) 원년이라 하였다.


ㄱ. 국호를 사로국에서 ‘신라’로, 왕호를 마립간에서 ‘왕’으로 고쳤다.

ㄴ. 왕은 연호를 고쳐 ‘개국(開國)’이라 하였으며 국사를 편찬토록 하였다.

ㄷ. 왕호를 ‘성법흥대왕’이라 쓰기도 하였다.

ㄹ. ‘신라육부’가 새겨진 울진봉평신라비가 세워졌다.

ㅁ. 연호를 ‘인평(仁平)’으로 고쳤으며 분황사와 영묘사를 창건하였다.


① ㄱ, ㄴ     ② ㄴ, ㄷ

③ ㄷ, ㄹ     ④ ㄹ, ㅁ

3. 정답 ③

[자료 분석]

자료는 532년 금관가야가 신라 법흥왕에 의해 멸망한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밑줄 친 왕은 신라의 법흥왕이다.

[정답 해설]

ㄷ. 울주 천전리서석 을묘명에는 법흥왕을 성법흥대왕(聖法興大王)이라고 높여 부르고 있는데, 여기의 을묘년은 법흥왕 22년(535)에 해당하므로 법흥왕은 살아 있을 때에 이미 성 법흥대왕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다.

ㄹ. 울진봉평 신라비는 524년(법흥왕 11)에 세워진 신라의 비석으로 신라 6부의 존재와 법흥왕 때 율령이 반포되었음을 보여준다.

[오답 피하기]

ㄱ은 지증왕, ㄴ은 진흥왕, ㅁ은 선덕여왕에 대한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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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고구려의 대중국투쟁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① 고구려는 요서지역을 선제공격함으로써 수나라를 견제하였다.

② 수 양제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다.

③ 을지문덕은 당 태종의 2차 침입을 살수대첩으로 막아냈다.

④ 양만춘은 수나라의 별동대를 안시성에서 격퇴하였다.

4. 정답 ①

[정답 해설]

① 고구려 영양왕 때인 598년에는 중국의 요서 지방을 선제 공격하여 수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오답 피하기]

② 천리장성은 고구려가 당(수X)의 침략에 대비하여 631년 (영류왕 14)부터 16년의 공사 끝에 완성(647, 보장왕6)한성으로 북쪽의 부여성(농안)에서 남쪽의 비사성(대련)에

이른다.

③ 살수대첩(612)은 수 양제의 군대를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크게 격파하여 결정적 승리를 거둔 전투이다.

④ 양만춘은 안시성에 당 태종의 군대를 격퇴하였다.(안시성 전투, 645)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수나라 우중문의 별동대를 대파하였다.(살수대첩)







5. 밑줄 친 ‘이것’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이것은 조선시대 법령의 기본이 된 법전이다. 조선 건국 초의 법전인 경제육전의 원전과 속전, 그리고 그 뒤의 법령을 종합하여 만든 통치의 기본이 되는 통일 법전이다.

(……) 편제와 내용은 경제육전과 같이 6분 방식에 따랐고, 각 전마다 필요한 항목으로 분류하여 균정하였다.


① 성종 때 완성되었다.

② 조준이 편찬을 주도하였다.

③ 이․호․예․병․형․ 공전으로 나뉘어 정리되었다.

④ 세조 때 만세불변의 법전을 만들기 위해 편찬을 시작하였다.

5. 정답 ②

[자료 분석]

조선시대 법령의 기본 법전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밑줄 친 이것이 경국대전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①,④ 경국대전은 세조 때부터 편찬되기 시작하여 성종 때 완성되었다.

③ 경국대전은 이전, 호전, 예전, 병전, 형전, 공전의 6전으로 구성된 조선의 기본 법전으로, 후기까지 법률 체계의 골격을 이루었다.

[오답 피하기]

② 조준이 편찬한 법전은 경제육전이다.






6. 1876년 체결된 조·일 수호조규에 들어있지 않은 조항은?


① 조선은 자주국으로 일본과 동등권을 갖는다.

② 인천과 부산에 일본공관을 둔다.

③ 일본인 거주지역 내에서의 치외법권을 인정한다.

④ 일본선박의 조선연해 측량을 인정한다.

6. 정답 ②

[정답 해설]

①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제1관 : “조선은 자주국이며 일본과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③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10관 : “일본국 인민이 조선국이 지정한 각 항구에서 죄를 범할 경우 일본국 관원이 재판한다.”(치외법권)

④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7관 : “조선국은 일본국의 항해자가 자유롭게 해안을 측량하도록 허가한다.”(해안측량권)

[오답 피하기]

② 강화도 조약에 없는 내용이다. 일본은 1876년(고종 13)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한 뒤 1880년에 서울에 공사관을 설치하였다.






7. 영조의 정책에 대한 서술로 옳은 것을 <보기>에서 모두 고르면?

<보기>

ㄱ. 형벌 제도를 개선해 가혹한 악형을 없앴다.

ㄴ. 서얼 출신의 학자를 검서관에 기용하고 공노비의 해방을 추진하는 등 서얼과 노비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ㄷ. 균역법을 시행하여 양반과 상민이 똑같이 군포를 부담하게 하였다.

ㄹ. 청계천 준설 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어주고 홍수에 대비하게 하였다.


① ㄱ, ㄹ       ② ㄴ, ㄷ

③ ㄱ, ㄴ, ㄷ   ④ ㄱ, ㄷ, ㄹ

7. 정답 ①

[정답 해설]

ㄱ. 영조는 압슬형, 자자형 등 가혹한 형벌을 폐지하고 사형수에 대한 삼심제를 엄격하게 시행하였다.

ㄹ. 영조는 청계천 준설 사업을 실시하여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서울 시민의 하수처리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였다.

[오답 피하기]

ㄴ. 정조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들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하여 서얼에 대한 차별을 개선하고, 노비에 대한 차별도 완화하였다.

ㄷ. 영조 때 균역법을 시행한 것은 옳으나 양반과 상민이 똑같이 군포를 부담하게 한 것은 아니다. 상민에게만 받던 군포를 반상에 구분 없이 가호에 부과하여 양반들에게도 군포를 징수한 제도는 흥선대원군의 호포법이다.







8. 고려시대 불교문화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① 태조는 훈요십조에서 전국에 비보사찰을 제한없이 늘려 불국토를 이루도록 당부하였다.

② 현종 대에는 거란의 대장경을 수입하여 고려의 독자적인 초조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했고, 완료한 후 흥왕사에 보관하였다.

③ 광종 대 균여는 국청사를 중심으로 해동천태종을 창시하고, 교종과 선종의 대립을 완화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④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던 향도를 계승하여 신앙의 결속을 다졌으며, 매향 행위를 함으로써 내세의 복을 빌기도 했다.

8. 정답 ④

[정답 해설]

④ 지금까지 확인된 최초의 향도 사례는 신라에서 609년(진평왕 31)경에 김유신을 중심으로 조직된 화랑도를 ‘용화향도'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한다. 이후 고려에서도 삼국시대부터 있어 왔던 향도를 계승하여 신앙의 결속을 다졌으며, 향나무를 바닷가에 묻는 매향 활동을 통하여 내세의 행운과 국태민안을 기원하였다.

[오답 피하기]

①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사원을 지을 때 함부로 짓지 말고 도선의 풍수사상에 맞게 지을 것을 당부하였다.

② 현종 때 초조대장경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옳으나 거란대장경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들어온 것은 문종 17년인 1063년의 일이다. 초조대장경은 70여 년에 걸쳐(현종~선종, 1011~1087) 목판에 새겨 간행한 대장경으로 성종 연간 고려에 전래된 송의 개보판대장경 등을 바탕으로 기초 작업이 이루어졌고, 이후 문종 연간에 새롭게 전래된 거란의 대장경도 참고하여 제작되었다. 완성된 대장경은 흥왕사(興王寺) 대장전(大藏殿)에 보관되어 있다가 대구 팔공산의 부인사(符仁寺)에 옮겨 보관했다. 이후 1232년(고종 19년)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버려 소실되었다.(인쇄본 일부 현존)

③ 의천은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하기 위하여 국청사를 창건하고 숙종 때 해동천태종을 창시하였다.






9. 조선시대 중앙통치기구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① 예문관-궁중 도서를 관리하고 국왕의 자문에 응하는 학문기관

② 사간원- 국왕에 대한 간쟁과 논박을 담당한 언론기관

③ 승정원-국왕의 명령을 신하들에게 전달하는 비서기관

④ 의금부-국왕의 명령을 받아 중대한 죄인을 다스리는 사법기관

9. 정답 ①

[정답 해설]

② 사간원은 국왕에 대한 간쟁과 정사의 잘못을 논박하는 직무를 관장하였다.

③ 승정원은 왕명을 출납하는 왕의 비서 기관이다.

④ 의금부는 국왕 직속 특별 사법 기관으로 반역죄, 강상죄 등 의 중죄를 처결하였다.

[오답 피하기]

① 예문관이 아니라 홍문관에 대한 내용이다. 예문관은 국왕의 교서 작성을 담당한 기관이다.






10. 1960년대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① 귀속재산처리법을 공포하였다.

② 한미경제조정협정을 체결하였다.

③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④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실시되었다.

10. 정답 ④

[정답 해설]

④ 1960년대에는 1962년부터 1966년까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었다.

[오답 피하기]

①귀속재산처리법은이승만정부때인1949년12월에제정되었다.

② 한미경제조정협정은 이승만 정부 때인 1952년 5월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가 이미 공여되고 있는 대한 경제원조와 관련해 각자의 역할과 양자 간의 관계 조정을 하고자 맺은 협정이다.

③ 김영삼 정부 때인 1996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였다.







11. 조선 초기의 대외관계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옳은 것은?


① 화이관(華夷觀)이라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사대교린(事大交隣)을 기본정책으로 삼았다.

② 북진정책 하에 고구려 고토의 회복을 도모하였다.

③ 일본과 여진에 대해서는 무력진압을 위주로 하였다.

④ 동남아시아국가와는 교류가 없었다.

11. 정답 ①

[정답 해설]

① 조선은 화이관이라는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사대교린의 외교 정책을 기본 정책으로 삼았다. 사대교린은 큰 나라를 받들어 섬기고 이웃 나라와는 화평하게 지낸다는 뜻으로, 사대는 명나라에 대한 외교책이며, 교린은 여진족과 일본 등 에 대한 외교책이었다.

[오답 피하기]

② 고려 태조 때에는 고구려의 옛 땅을 되찾고자 하는 의욕으로 강력한 북진 정책을 추진하여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서경(평양)에 중앙 부서의 분소(分所)를 설치하는 분사 제도를 실시하는 등, 북진 정책의 전진 기지로 적극 개발하였다.

③ 조선은 여진과 일본에 대해서 회유책과 강경책을 병행하였다.

④ 조선 초에는 류큐, 시암, 자와(자바) 등 동남 아시아의 여러나라와도 교류하였다.






12. <보기>의 밑줄 친 ㉠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보기>

신라에서는 사람을 등용하는 데에 ㉠ 을(를) 따진다.

[때문에] 진실로 그 족속이 아니면, 비록 큰 재주와 뛰어난 공이 있더라도 넘을 수가 없다. 나는 원컨대, 서쪽 중국으로 가서 세상에서 보기 드문 지략을 떨쳐서 특별한 공을 세워 스스로 영광스러운 관직에 올라 고관대작의 옷을 갖추어 입고 칼을 차고서 천자의 곁에 출입하면 만족하겠다.


① 통일신라기에 성립하였다.

② 국학이 설립되면서 폐지되었다.

③ 진골은 대아찬 이상의 고위 관등만 받을 수 있었다.

④ 혈통에 따른 신분제로서 승진의 상한선을 결정했다.

12. 정답 ④

[자료 분석]

자료는 삼국사기에 기록된 6두품 설계두와 관련된 사료로 ㉠은 골품이다. 따라서 골품제에 관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정답 해설]

④ 신라에는 혈연에 따라 사회적 제약이 가해지는 골품 제도가 있었다. 골품은 개인의 사회 활동과 정치 활동의 범위까지 엄격히 제한한 제도로 관등 승진의 상한선은 골품에 따라 정해져 있었다.

[오답 피하기]

①,② 골품제도는 신라의 국가형성기에 만들어지기 시작해 6세기 초는 이미 법제화되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을 거쳐 멸망에 이를 때까지 신라 사회를 규제하는 중요한 근본으로서 기능하였다.

③ 골품에 의한 관등의 상한선은 정해져 있었으나 하한선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5관등 대아찬 이상은 진골이 독점하긴 하지만, 진골도 대아찬 이하 관등에 임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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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보기>에 해당하는 고대 국가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은 것은?


<보기>

∙ 은정월(殷正月)에 제천행사를 행하면서 국중대회를 열었다.

∙ 전쟁이 일어났을 때는 소를 죽여 그 굽으로 길흉을 점쳤다.

∙ 형이 죽으면 형수를 부인으로 맞아들였다.

∙ 남의 물건을 훔쳤을 때는 물건 값의 12배를 배상하게 하였다.

∙ 지방 행정구획으로 사출도가 있었다.


① 소와 말을 순장하였고 큰 새의 깃털을 장례에 사용하였다.

② 제천행사는 ‘동맹’이었으며 국동대혈에서의 제사가 있었다.

③ 천군이 신성지역인 소도에서 농경의례 등을 올렸다.

④ 재해가 발생하면 왕은 교체 혹은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

13. 정답 ④

[자료 분석]

우제점법, 형사취수제, 1책 12법, 사출도 등을 통해 보기에 해당하는 국가가 부여임을 알 수 있다.

[정답 해설]

④ 부여의 가(加)들은 왕을 추대하기도 하고, 수해나 한해를 입어 오곡이 잘 익지 않으면 그 책임을 왕에게 묻기도 하였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에 따르면 가뭄이나 장마가 계속되어 오곡이 영글지 않으면 그 허물을 왕에게 돌려 ‘왕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거나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고 전한다.

[오답 피하기]

① 삼한에 대한 설명이다. 마한에서는 장사를 지내는 데 소나 말을 순장하였고, 진한과 변한에서는 장사 지낼 때 큰 새의 깃을 함께 묻어 죽은 사람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오르기를 기원하였다.

② 고구려에서는 10월에 추수 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③ 삼한에는 정치적 지배자 외에 제사장인 천군이 있었다. 또한 신성 지역으로 소도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천군은 농경과 종교에 대한 의례를 주관하였다.






14. 고려시대 무신정권기 정치와 문화에 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① 무신집권기 초반 정권을 잡은 무신들은 상장군․대장군의 회의기관이었던 기존의 회의체 중방을 권력기구로 삼았다.

② 최충헌은 군국의 정사를 관장하는 교정도감을 설치했고, 최우는 정방과 서방을 사저에 설치했다.

③ 김보당과 조위총은 최충헌의 집권에 항거하여 군사를 일으켰다.

④ 이규보는 동명왕편을 지어 고려가 천손의 후예인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표현했다.

14. 정답 ③

[정답 해설]

① 고려 시대 중방은 최고위 무신들로 구성된 회의 기구로 무신정변 직후부터 최충헌이 권력을 잡을 때까지 최고 권력기구였다.

② 최충헌은 최고 집정부의 구실을 하는 교정도감을 설치하고 자신이 교정도감의 수장인 교정별감이 되어 권력을 행사하였다. 최충헌의 뒤를 이은 최우는 자신의 집에 정방을 설치하여 모든 관직에 대한 인사권을 장악하였고, 문인들의 숙위 기관인 서방을 설치하고 문학적 소양과 함께 행정 실무능력을 갖춘 문신들을 등용하여 고문(자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④ 이규보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있는 동명왕편은 고구려 건국의 영웅인 동명왕의 업적을 칭송한 일종의 영웅서사시로서, 고구려 계승 의식을 반영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하였다.

[오답 피하기]

③ 김보당의 난(1173)과 조위총의 난(1174)은 최충헌이 아니라 정중부 집권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15. <보기>의 사실들을 시간순으로 나열했을 때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보기>

ㄱ. 제2차 미․ 소 공동위원회 결렬

ㄴ. 좌․우 합작 위원회, ‘좌․우 합작 7원칙’에 합의

ㄷ. 이승만, 정읍 발언에서 남한만의 정부 수립 주장

ㄹ. 유엔 소총회, 가능한 지역에서만 총선거 실시 결의


① ㄱ    ② ㄴ    ③ ㄷ    ④ ㄹ

15. 정답 ①

[정답 해설]

ㄱ. 2차 미·소 공동위원회는 1947년 5월 개최되었으나 협의대상 문제에 대한 미국과 소련의 대립으로 같은 해 10월 또다시 결렬되고 말았다.

ㄴ. 1946년 10월 좌우 합작 위원회는 좌익과 우익의 제안을 절충해 ‘좌우 합작 7원칙’을 발표했다.

ㄷ. 1차 미·소 공동 위원회 결렬 이후인 1946년 6월 이승만은 전라도 정읍에서 행한 연설에서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하였다.

ㄹ. 남북한 총선거가 불가능해지자 1948년 2월 유엔 소총회는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활동이 가능한 지역에서 선거를 치르기로(남한만의 선거) 결정하였다.

따라서 시간순으로 나열했을 때 세 번째에 해당하는 것은 ①번에 해당한다.






16. <보기> 자료의 민족 운동가들이 추진한 독립운동에 대한 서술로 가장 옳은 것은?


<보기>

8월 초에 여러 형제분이 모여서 같이 만주로 갈 준비를 하였다. 비밀리에 땅과 집을 파는데, 여러 집을 한꺼번에 처분하니 얼마나 어려우리요. 그때만 해도 여러 형제분 집은 예전 대갓집이 그렇듯이 종살이를 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고 (……)우리 집 어른(이회영)은 옛날 범절을 따지지 않고 위아래 구분 없이 뜻만 같으면 악수하여 동지로 대접하였다. (……) 1만여 석의 재산과 가옥을 모두 팔고 경술년(1910) 12월 30일에 큰집, 작은집이 함께 압록강을 건너 떠났다.

-이은숙, 민족 운동가 아내의 수기, 서간도 시종기


① 신흥강습소를 만들어 민족 교육과 독립군 양성을 추진하였다.

② 대한광복군정부, 대한국민의회 등의 독립운동 기지를 설립하였다.

③ 간민회를 기반으로 서전서숙과 명동학교 등 학교를 세워 민족 교육을 실시하였다.

④ 나라를 되찾은 후 고종을 복위시키려는 목표를 세우고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준비하였다.

16. 정답 ①

[자료 분석]

자료는 신민회의 이회영과 그의 형제들이 모든 재산을 처분하고 독립 운동 기지 건설을 위해 만주로 망명하고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정답 해설]

① 이회영 등 신민회(1907~1911)의 회원들은 서간도 삼원보에 신흥 강습소(후에 신흥 무관 학교로 개편)를 설립하여 무장 투쟁을 준비하였다.

[오답 피하기]

② 연해주의 권업회는 1914년 이상설을 정통령, 이동휘를 부통령으로 하는 대한 광복군 정부를 수립하였다. 대한국민의회는 1919년 3월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손병희를 대통령으로,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여 조직된 임시정부 성격의 단체이다.

③ 간민회는 1913년 북간도 지역에서 김약연 등이 조직한 한국인 자치단체이고, 북간도의 서전서숙은 1906년 이상설이, 명동학교는 1908년 김약연이 설립한 사립학교이다.

④ 1912년 임병찬이 고종의 비밀 지령을 받아 결성한 독립 의군부에 대한 설명이다.






17. 대한제국의 근대화 사업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①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하여 지계를 발급하였다.

② 서북철도국을 설치해 경의철도 부설사업을 추진했다.

③ 우편학당, 전무학당, 상공업학교, 의학교, 광산학교 등을 설립하였다.

④ 고종 대에 비변사를 설치하여 근대화사업 전반을 관장하였다.

17. 정답 ④

[정답 해설]

① 대한제국은 양전 사업을 실시하고 근대적 토지 소유 증명서인 지계(地契)를 발급하였다.

② 대한제국은 1900년에 서북 철도국을 세워 경의선의 독자적 부설을 시도하였다.

③ 대한제국 시기에도 학교 설립에 힘을 기울여 우편전신 기술을 가르치기 위한 우무학당(우편학당)과 전무학당을 비롯해 상공업학교, 의학교, 광산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오답 피하기]

④ 비변사는 16세기 중종 초에 여진족과 왜구에 대비하기 위해 임시 회의 기구로 설치되었다. 고종 대에 흥선대원군은 세도 가문이 장악하고 있던 비변사를 폐지시키고,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부활시켜 정치와 군사를 분리시켰다.






18. <보기>에 나열된 고려시대의 사건들을 시간순으로 바르게 나열한 것은?


<보기>

ㄱ. 거란의소손녕이수십만대군을이끌고고려를침입하여, 서희가 외교담판으로 거란군의 철수를 이끌어 냈다.

ㄴ. 노비의신분을조사해본래양인인사람들을 환속시켰다.

ㄷ. 송나라사신서긍이고려를방문하고 고려도경을 지었다.

ㄹ. 전지(田地)와 시지(柴地)를 실직(實職)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모두에게 처음 지급하였다.


① ㄱ→ㄴ→ㄹ→ㄷ      ② ㄱ→ㄷ→ㄴ→ㄹ

③ ㄴ→ㄱ→ㄹ→ㄷ      ④ ㄴ→ㄹ→ㄱ→ㄷ

18. 정답 ④

[정답 해설]

ㄴ. 고려 광종은 노비안검법(956)을 실시해 후삼국 시대의 혼란기에 불법으로 노비가 된 자를 조사하여 양인으로 해방시켰다.

ㄹ. 경종 때인 976년에 제정된 시정 전시과에 대한 내용이다.

ㄱ. 고려 성종 때인 993년 거란의 소손녕은 80만 대군을 이끌고 침략하여, 고려가 차지하고 있는 옛 고구려 땅을 내놓고 송과의 교류를 끊을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소손녕과의 외교 담판에 나선 서희가 거란과 교류할 것을 약속하는 대신, 고려가 고구려의 후계자임을 인정받고 압록강 동쪽의 강동 6주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ㄷ. 고려도경은 1123년(인종 1) 송나라 사절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이 고려에서 보고 들은 것을 모아 지은 책이다.







19. <보기>는 1927년에 창립한 어느 단체의 강령이다. 이 단체에 대한 설명으로 가장 옳지 않은 것은?

<보기>

1. 우리는 정치․경제적 각성을 촉구한다.

1. 우리는 단결을 공고히 한다.

1. 우리는 기회주의를 일체 부인한다.


①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이 연합하였다.

② 일제에 의해 조작된 소위 105인 사건으로 탄압을 받았다.

③ 전국에 140여 개소의 지회와 약 4만 명의 회원을 확보하였다.

④ 1929년에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민중대회의 개최를 계획했다.

19. 정답 ②

[자료 분석]

자료는 1927년 창립된 신간회의 강령이다.

[정답 해설]

① 신간회는 1927년 2월 비타협적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간의 협동체로 창립되었다.

③ 신간회는 서울에 본부를 설치하고 전국 각지에 조직을 확산시켜 140여 개의 지회를 구성하였다. 만주와 일본에도 지회를 조직하였으며, 2만~4만의 회원을 확보해 일제 치하 최대 규모의 민족 운동 단체로 성장하였다.

④ 신간회는 1929년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현지에 진상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진상 보고를 위한 민중 대회를 개최하려 하였으나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홍명희 등이 검거됨으로써 실행되지 못하였다.

[오답 피하기]

② 신민회에 대한 설명이다. 1911년 일제는 서북 지방을 중심으로 한 배일 기독교 세력과 신민회의 항일 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데라우치 총독 암살 음모를 조작하여 수백 명의 민족 지도자를 투옥하고, 중심인물 105인을 재판에 회부하였다. 이 105인 사건으로 인하여 신민회는 와해되고 말았다.






20. 조선 초기의 과전(科田)에 대한 설명 중 가장 옳은 것은?


① 과전은 성종 대까지 경기도에 한정되었다.

② 현직 관리에게 소유권과 수조권(收租權)을 부여하였다.

③ 전직 관리와 현직 관리에게 모두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④ 과전에 대해서 상속권을 인정해 주었다.

20. 정답 ③

[정답 해설]

③ 조선 초기 과전법 하에서 과전은 전·현직 관리에게 수조권을 지급하였다. 과전은 경기 지방의 토지로 지급하였으며, 받은 사람이 죽거나 반역을 하면 국가에 반환하도록 정해져 있었다.

[오답 피하기]

① 과전법에서는 과전의 지급을 경기도에 있는 토지로 한정하였다. 그러나 1417년(태종 17)에 과전의 3분의 1을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에 옮겨 나누어 주었고, 1431년(세종 13)에는 이것을 경기도로 환급하였다.

② 전·현직 관리에게 수조권(소유권X)을 지급하였다.

④ 과전법에서는 경지 지방의 토지를 과전으로 삼아 전·현직관리에게 1대에 한하여 지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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