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도별 고려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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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3. 23. 02:55 한국사/2 연표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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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0.00  공주석장리와 단양수양개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조각 발견)

-10000.00  구석기사람 (불을 이용 언어를 사용)

-10000.00  단양상시사람은 남한에서 처음으로 출토된 슬기사람

-10000.00  제천의 점말동굴 및 공주석장리 유적 (전기구석기 ~ 후기구석기 여려 문화층)

-9000.00  구석기 중기 (큰 몸돌에서 떼어난 돌조각인 격지/박편조각/단일용도화)

-8000.00  구석기 후기 (쐐기 같은것을 대고 형태가 같은 여러 개의 돌날격지를 만듦)

-8000.00  움집에 관한 두 학설 (후기구석기/ 신석기)(수혈거주지(땅파서짓는)는 신석기)

-7000.00  신석기전기 토기 (이른민무늬(원시무문)/ 덧무늬(융기)/ 눌러찍기무늬)

-6000.00  신석기중기 토기 (빗살무늬 토기)

-5000.00  신걱기후기 토기 (채문토기/ 무슨 즐문 토기 (물결 번개 타래))

-4000.00  신석기 말기인 기원전 2000년 부터는 하남성의 신석기문화 영향 (물결/번개/타래)

-4000.00  신석기 예술 (웅기서포항 호신부/ 주술적 신앙과 밀접한 관계)

-4000.00  신석기말기 토기 (덧띠새김무늬 토기)

-2000.00  단군신화 (청동기 사용하는 천신족이 곰 토템족을 흡수통합)(단군 곰 호랑이로 연결 틀림!)(하늘과 연결!)

-2000.00  동이족 (중국 중심으로/ 한민족/만주족/일본족 모두포함)

-2000.00  선돌은 고인돌과 함께 청동기시대의 거석문화로 알려짐

-2000.00  영일 칠포리/  고령양전리 (동심원/방패기하문/ 동물그림x)

-2000.00  우리민족의 주류 (예 맥 한)

-2000.00  우리민족의 형성 (청동기문화의 주역인 예맥족이 신석기 담당 고아시아적 흡수통합)

-2000.00  울주 천전리 바위그림 (최초발견 암각화/ 청동기~신라시대)

-2000.00  청동기 가족단위 독립적 농경 발전 아님!!! (가부장 중심 몇 쌍의 부부와 자손들이 모여 하나의 대가족)

-2000.00  청동기 관계 (보/ 저수지 아님!!) 청동기 유물 (바퀴날도끼(환상석부))

-2000.00  청동기 농구 (나무따비 나무후치 등 목제농기구를 사용하였다)

-2000.00  청동기 무덤 (고인돌과 "돌널무덤"이 대표적)

-2000.00  청동기 민족 (토착 빗살무늬토기인 고아시아족/ 민무늬토기인(예맥족) 이주)

-2000.00  청동기 유물 (다뉴조문경(거친무늬)/ 유구석부(홈자귀)/ 지석묘(고인돌))(청동기 시작 기원전 7세기 틀림!)

-2000.00  청동기 유적 (회령 오동리/ 나진 초도/ 강계 공귀리/ 평양 사동 금탄리 남경/ 여주흔암)

-2000.00  청동기 토기 (붉은 간토기(홍도)/ 가지무늬토기(붉은간토기의 변형, 주술적목적))

-2000.00  청동기문화의 특징 (/북방 시베리아계통의 영향/ 비파형 거친무늬 거울)

-2000.00  청동기시대의 신석기 토기 사용 (빗살무늬 출토됨/ 하지만 덧무늬 이른민무늬 사용x)

-2000.00  청동기시대의 주거 (움집 기둥을 세우는 초석을 이용하는 방법이 발달)

-1000.00  고조선 (지방관이 파견됨/ 왕위세습제가 마련됨)

-1000.00  고조선 사회에서 화폐 사용 (8조금법 중 도둑질=노비 or 화폐로 속죄)

-1000.00  고조선(중앙집권국가아님!! 연맹단계에서 멸망!! 단 중앙집권적요소(부자상속제 등)있음)

-1000.00  고조선문헌(조선 통사) 단군신화(위서,제왕운기,세종실록지리지,응제시주, 동국여지)

-1000.00  고조선은 요령지방(요동+요서)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하였다

-1000.00  고조선의 개념 : 좁은의미(단군조선) 넓은의미(단군조선/위만조선/한4군시대)

-1000.00  고조선의 정치조직 부왕적 존재 비왕 (고추가 및 갈문왕의 원형)

-1000.00  관자는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조선이라는 명칭이 불려져 왔음을 기록

-1000.00  비파형동검 (은주시대의 청동기나/ 내몽골의 오르도스식 청동기와 매우다름)

-1000.00  비파형동검 시기 (변태섭 기원전 10세기/ 교과서 기원전 2000년~1500년 경)

-1000.00  비파형동검(만주로부터 한반도 남단까지 출토) 문화는 동호나 조선 예맥이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1000.00  사기 조선전에는 위만조선 성립 및 한무제가 침략하여 조선 멸망시킨 내용 있다

-1000.00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삼한에 대한 내용이 기록됨

-1000.00  위략은 위지동이전에 인용된 문헌이며 기원전 4세기부터 조선에서 왕 칭했음 기록

-1000.00  청동기시대의 연대 (기원전10세기~4세기) 교과서: 기원전20세기~기원전5세기

-1000.00  한서지리지에는 8조금법이 실려있다

-700.00  기원전 8세기~ 7세기 무렵에 벼농사도 본격화되기 시작함

-300.00  기원전 4세기말~3세기 초(1세기 경 아님!) 연의장수 진개의 공격으로 서방 2000리 빼앗김

-300.00  명도전(기원전4세기) 반량전(기원전3세기) 오수전(기원전2세기)

-300.00  세형동검 (기원전 4~3세기의 소산)(북방계와 중국계 청동기문화 혼합)

-300.00  세형동검 (청천강 이남에서 한반도 남단까지)(후기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 비파형 전기고조선)

-200.00  고조선의 관직명 (상 대신 대부 박사 도위)

-200.00  단군조선말기 : 옥저 동예를 정복하여 수천리 차지

-200.00  부왕 준왕과 같은 강력한 왕 등장 왕위세습함 (위만조선 이전)

-200.00  온돌장치는 학설 분분하지만 일반적으로 철기시대

-200.00  철기시대 경제 (생업경제의 다양화/ 어로가 다시발달/ 김해양산웅천 조개무지 형성)

-200.00  철기의전래(기원전 5세기경) 철기문화의 본격적 수용 (위만조선시기)

-200.00  철제무기의제작(청천강이북에서 기원전 3세기 -> 기원전 4세기라고하는 문제도 있음)

-100.00  위만조선은 진번 임둔 등 주변의 여러나라 복속시켜 나감

-100.00  위만조선의 멸망 (흉노와 연결가능성을 염려한 한무제의 침략을 받아 멸망)

-100.00  춘천 동해의 철자 여자형 집터 (동예의 집자리 유적)

-100.00  한군현은 토착인들에게 관직이나 인수 의책을 주는 등 회유적인 분리책을 실시

-80.00  한 4군 중 진번과 임둔은 토착인의 저항받아 폐지

-75.00  현도군이 고구려의 저항받아 흥경지방으로 후퇴

-50.00  고구려 혼인 (솔서혼, 예서제, 봉사혼/ 초기에 지참금/ 후기에 없어짐/ 자유교제)

-50.00  고구려도 1책 12법 시행하였음 (위지동이전 기록은 아니고 후대의 주서 구당서 기록)

-50.00  고구려법 (소나 말을 죽인자를 노비로 삼음/ 빚쟁이 자식을 노비로 삼음)

-50.00  고구려의 풍습 : 뇌옥이 없고 장례를 후하게 치러 금은 재화를 무덤에 넣는 후장풍습

-50.00  동예 지극히 폐쇄적인 혈연중심 씨족사회

-50.00  동예에는 병들어 죽으면 즉시 새집을 지어 살았다

-50.00  동예에는 새벽에 별자리 관찰하여 그 해의 풍흉 미리 안다는 기록존재

-50.00  동예의 언어와 법속은 고구려와 같았으나 의복은 달라 (마포/ 누에길러 명주생산)

-50.00  마산 성산패총 (철의 생산을 입증해 줌)(고령 고분 아님!)(고령고분 순장 다양한토기: 신라토기의 원형)

-50.00  마한 정치지배자 큰자 신지 그다음 읍차 <> 옥저 동예 읍군 삼로

-50.00  마한 풍습 남자들 문신함

-50.00  변한(혹은 가야는)은 낙랑과 왜에 철을 수출했음 (중국본토 아님)(사남해안의 해류 조사)

-50.00  부산 복천동 고분 (가야의 철기문화 및 기마전 전투양식 입증)

-50.00  부여 농경과 목축(반농반목) 과일 생산되지 않음 /(토질은 오곡에 알맞고 동이지역 중 가장 넓음)

-50.00  부여는 1세기 초에 이미 왕호를 사용하였음/ 영고에서는 죄인 판결하기도

-50.00  부여는 3세기 말 선비족의 침략을 받아 고구려에 편입됨

-50.00  부여왕 서거시 한나라로 부터 옥갑(금실로 만든 수의)를 하사받았다 (조공??)

-50.00  부여의 4조금법 (살인:사형/노비, 간음:사형, 질투:사형, 도둑절도: 1책12법)

-50.00  부여의 질투죄 여자시신 (지모신사상 : 인간이 땅에 묻히면 낟알처럼 영혼 부활)

-50.00  서옥제는 선불제다! (돈 패물 가지고 와 동숙요청 -> 자녀가 성장한 후에야 처가를 본가로 데리고 감)

-50.00  연맹왕국의 개념 (연맹왕국 자체/ 시대로보는 개념(기원후1년~300년))

-50.00  옥저의 가족공동묘 (나무곽! 석곽아님!!)

-50.00  옥저의 민며느리제는 일종의 매매혼이다 (조혼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50.00  읍락사회 (노예는 읍락 전체의 공동노예로 부려지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개는 수장층 호민층 사적소유)

-50.00  읍락사회 (삼한 소국의 경우 소국의 중심지 국읍에서도 주변 읍락을 잘 통제하지 못하였음)

-50.00  제천행사 부여의 영고만 12월(수렵사회의 전통 계승) (나머지 10월)(영고 전쟁이 있을 떄도 거행 됨)

-50.00  졸본지방에서 고구려 건국 - 3년에 국내성 천도

-50.00  주몽신화 (어머니 유화부인/ 오곡종자/ 보리종자 비둘기 날라줌/ 곡모적 지모신사상)

-1.00  군장국가(청동기문화가 기반)(철기 아님!)/선민사상의 출현 군장국가시대

0.00  "고대사회의 성격 = 중앙집권적 요소" 라는 문제도 있었음

0.00  5부지배자의 독자성 (소노부나 절노부 독자적 종묘가짐)

0.00  강목체는 사략체보다 더욱 가치평가를 중시하는 서술체계

0.00  강목체는 편년체의 하나로 가치평가를 중시/ 사략체 편년체와 강목체의 혼합

0.00  고대국가형성기(/부체제(자치권존재)/공납적 지배체제)

0.00  군장국가시대 (사로 6촌)

0.00  기사본말체 (삼국유사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0.00  기전체 (편년체 기본체 제외 나머지)(휘찬여사(홍여하) 발해고 해동역사 등등)

0.00  널무덤(일명 토광묘)의 정의 (땅에 구덩을 파고 널을 안치하는 묘제)

0.00  동북공정 (일사양용론 -> 역사영역론 (최대평창하였던 시기를 영토기준))

0.00  사료란 事實속에서 史實을 선정한 것이다

0.00  석탈해의 등장을 전후로 거서간 혹은 차차웅에서 니사금으로 바뀜

0.00  소노부가 왕이되었는데 계루부가 대신한다/ 주몽시조집단이 비류국세력을 누르다

0.00  연맹체국가 때 중앙정치조직의 성립/ 고대국가 완성단계에는 중앙집권(지방관파견)

0.00  왕권강화와 연결시키려면 지배층의 이익을 억제하는 요소가 있어야 함

0.00  차차웅 (정치적 제사를 담당하는 사제역할만 맡았기 때문에 제정분리라고 보는것)

0.00  청동기와 철기문화를 배경으로 초기국가가 성립하였다 (청동기= 고조선)

0.00  편년체 (주로 실록 등록 사략 절요 통감)

0.00  편년체 중 강목체(민지 본조편년강목/ 유계의 여사제강(서인)/ 안정복 동사강목)

0.00  형사취수제와 서옥제 -> 고대국가의 지배층 혼인풍습/ 평민들 : 자유교제

1.00  고대국가로 발전한 뒤에는 왕족의 시조신 및 국가신을 받드는 경향

1.00  고대국가발전기(형제세습에서 부자세습/부의 행정적 개편/ 공납지배 -> 지방관파견)(고국천왕/눌지)

1.00  불교를 수용하기 전에 이미 삼국은 유교를 수용하였다 (국가의례 등)

1.00  삼국초기에는 각부는 중앙왕실에 예속되었으나 각자 관리거느리고 자치권 행사

2.00  고대국가완성기(부체제해체/귀족회의체에서 행정관부 분리/관직관등분화)

2.00  고대국가완성기에 확대된 영역을 통일적 지도할 수 있는 종교로서 불교(유교아님)

2.00  백제의 부자세습은 고대국가 완성기인 근초고왕때 나타남 (나머지 국가는 발전기에)

85.00  점제현 신사비 (현존하는 우리나라 금석문 중 가장 오래된)(관개저수지 축조기념비)

100.00  2세기 태조왕은 동예 동옥저 등 피정복 지역 , 읍락 수장층 그대로 온존시킨채, 정기적 공납거두는 지배

100.00  태조왕 (계루부 고씨의 왕위세습권 확립/ 옥저 복속/ 요동과 현도군에 대한 공세)

100.00  태조왕 (중앙집권국가의 기틀이 마련되는 시기/ 중앙에 5부체제 성립)

179.00  고구려의 왕위계승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바뀜 (고국천왕)(신라눌지)(백제초고)

179.00  고국천왕 (5부의 명칭 개편 및 족장을 중앙귀족화하여 왕권강화)

179.00  고국천왕 (진대법 실시)

194.00  진대법 (고국천왕이 왕권강화 위해 을파소에게 건의)(고려의창/조선 상평창,환곡)

209.00  가야의 토기는 스에키의 원류가 되었음/ 부산복천동에서는 갑옷과 투구가 발견

209.00  전기가야는 돌덧널무덤과(돌무지덧널아님) 널무덤이 주류/ 후기가야는 석실무덤

209.00  포상 8국이 가야을 침략하려 하자/ 신라군이 구원함/ 3세기무렵 전기가야 성립

227.00  동천왕 서안평 공격 (서안평 공략은 미천왕)(오나라와 통교)

242.00  동천왕 서안평 선제공격 위 관구검 반격 받아 환도성 함락 남"옥저"까지 피신

244.00  위의(관구검) 고구려 침입으로 국내성 함락 (동천왕)

250.00  중천왕 관나부인이 왕비에대해 질투한다고 사형 (여자의 투기가 사형에 해당되는 죄로 여겨짐)

260.00  고이왕 (3세기 후반에는 목지국마저 복속시킴으로써 한반도 중부지역 석권함)

260.00  백제 고이왕 5좌평 14관등제 실시 (6좌평 16관등제로 개편/ 고이왕에 대표성)

300.00  문화전파 (한국의 무문토기문화는 일본의 야요이문화 형성에 큰 영향을 줌)

300.00  백제의 문화전파 (화가나 공예기술자들 건너가서 가람양식이 생겨나기도)

300.00  백제의 문화전파 (회화 천문 역법)(아스카문화 형성의 원동력)/ 가야 (토기제작기술)

300.00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스스로 문화 수립한 이후 직접 전수/ 단순한 중국문화 전달아님)

300.00  우경 (고구려 4세기 경 신라는 지증왕 6세기 경)(심경법시작) > 일반화는 고려시대

300.00  투호나 바둑 및 장기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백제지배층이 즐기던 오락

300.00  한성시대 수도 (나성은 없었고/ 북성(풍납토성) / 남성(몽촌토성) 남북성체제)

300.00  한성시대의 무덤 (돌무지무덤과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있음 대표성부여는 돌무지무덤)

313.00  낙랑 대방의 추출로 중국-낙랑-삼한-일본열도로 이어지던 해상교역활동 급격히 쇠퇴

313.00  미천왕은 5호 16국의 혼란기에 이르러서야 서안평 점령 및 이어 낙랑군 공략(= 한 4군 축출)

313.00  미천왕이 낙랑군을 완전히 축출함

350.00  백제 아직기(한자학습) 왕인(천자문 논어 한학의 시조)

350.00  전연의 침입 (4세기 중엽/ 고국원왕)

356.00  마립간시대 (내물마립간 ~ 소지마립간 500)/ 이사금시대(3대 유리이사금 부터)(미추왕릉-이사금-토광묘)

370.00  담로제의 첫 시행 (다양한 설/ 근초고왕 처음 지방관 파견 즈음)

371.00  근초고왕 고국원왕 전사시킴/ 372년 소수림왕의 불교공인// 근초고왕(동진 백제 임나가라 왜 교역로)

372.00  고구려 불교수용 (전진의 승려 순도)(아도 아님!!)

382.00  내물왕 대 두차례에 걸쳐 고구려 사신의 안내로 "전진"에 사신을 보냄

384.00  백제와 동진의 교섭로 (당항성~ 백령도~ 산둥반도)////(서남부 ~강소 절강성(남로)는 웅진시대임!!)

384.00  백제의 불교수용 (침류왕/ 마라난타)

384.00  백제지역 서진의 전문도기와 동진의 청자가 출토됨 : 활발한 대외무역 보여줌

395.00  로마제국의 동서분열/ 남북조의 성립(439)

400.00  고구려 덕흥리 고분에는 견우직녀도가 남아있음

400.00  고구려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으나 황제를 칭하지 않았다

400.00  광개토대왕 정복사업 (비려(거란) 숙신(여진) 동예통합)

400.00  광개토대왕릉비 (예서체로 새겨진 선돌양식/만주 집안현에 위치)(1부 건국신화 2부 정복 3부 수묘인연호)

400.00  광개토대왕비 (수묘인을 호단위로 징발/ 정복된 지역의 성과 촌의 수가 명기)(19세기 말기에 재발견)

400.00  광개토대왕비 (천제의 아들이요 모는 하백의 딸이다)(용비어천가 최초기록)(삼국사기와 내용 차이심함)

400.00  대왕릉비 (건국시조 천제아들, 모는 하백의 딸 : 해와 달 아님! 하늘과 강임!!)

400.00  대왕릉비 <> 모두루묘지 (건국시조 하백의 손자이며 해와 달의 아들인 추모성왕)

400.00  대왕릉비 비의 존재는 북방에 대한 관심이 표출되는 동국통감에서 처음 소개되었다

400.00  마립간 시기 (수도방리명칭 자비)(수도에 시장설치 소지)

400.00  마립간 시대의 무덤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 일인장원칙)/ 2~3세기에 출현하여/ 5~6세기에 본격)

400.00  마립간시기 (부자상속 420 눌지) (6부체제 성립 내물 400년경)

400.00  만주집안지역 (돌무지무덤 및 돌방무덤을 둘다 볼 수 있음)

400.00  삼국의 불교 (백제 : 소승불교계열 율종/ 고구려 : 삼론종 열반종/ 신라 : 계율종)

400.00  죽막동 유적 : 항해의 안전을 비는 대표적 제사유적 (4~5세기 중심 백제유물 출토됨)(6세기 무렵 아님!!)

427.00  평양성 천도 -> 나제동맹(433 눌지 비유왕) -> 웅진천도(475 문주왕임, 무령왕 아님!!)

427.00  평양천도 (백제는 중국 북위에 사신을 보내 도움요청)

432.00  장수왕이 북연 멸망 - 북위와 서로 대치 - 우호관계의 추진 (백제도 북위에 사신파견)

433.00  눌지마립간 (비유왕과 결혼동맹 체결/ 왕위의 부자상속제 확립/6촌을 6부로)(묵호자 불교 전래)

450.00  경당(평양천도 이후 설립한 귀족 자제 위한 사립교육기관)(지방에 공립교육기관 아님!!!)

450.00  고구려에서는 사기 한서 등의 역사책과 사전인 옥편 문학서인 문선을 이해하고 있었다

450.00  대대로 (장수왕 시기 국상제 개편의 결과/ 귀족회의에서 3년마다 선출 왕이 임명)

450.00  중원고구려비 (고구려와 신라가 국경문제로 다투다가 화해기념으로 세움)

450.00  중원고구려비 (대왕이 신라의 매금을 만나~)(신라=동이, 매금, 독자적 천하관)

450.00  중원고구려비 (신라토내당주/ 당주는 신라에 주둔한 고구려군의 우두머리)

475.00  문주왕의 웅진천도는 국력이 역전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시 기출에서 맞는문장으로 출제 !!)

475.00  장수왕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 (북(풍납)성 및 남(몽촌)성 개로왕 사살)

475.00  한성시대 (북방 유이민 계통인 진씨와 해씨 왕비족/ 남천 뒤 토착세력인  6성대두)

479.00  대가야는 소백산맥을 넘어 남원의 아막산성까지 진출하였다 반격당함

479.00  대가야왕 하지는 남제에 사신을 보냈음 (중국사서에 전하는 유일한 가야사람)

479.00  장수왕 (유연과 연합하여 거란족의 지두우의 분할점령 시도/흥안령산맥까지 판도)

487.00  소지마립간 우역설치 (조선시대 역참제도)(육상교통기관 마필공급)/ (동성왕과 혼인동맹 493)

494.00  부여의 멸망 (문자왕)

500.00  고구려 평양천도이후 (대대로/ 내평(내무)/ 주부(재정담당)/ 외평(외무))

500.00  고구려의 5부 장관 (사자) 고구려 화랑(선비) 백제화랑 (수사)

500.00  고구려의 관등은 크게 형계와 사자계로 나뉜다

500.00  백제 조정좌평(형옥) 내법좌평(예조) 22부(내관 외관) 16등급 자비청

500.00  백제사회의 법 (도둑질한자는 귀양과 2배)(횡령한자는 종신금고형 및 3배배상)

500.00  백제의 관등과 복색제는 연관된다 (자 비 청)

500.00  백제의 벽화 (사신 중 백호/ 연꽃 구름무늬 일부 식별가능)(생활풍속도 없음!!)

500.00  삼국 관등 (백제 : 솔계/덕계/문독이하)(신라 경위제 : 찬, 비찬(나마계열, 사지계열))

500.00  삼국시대에는 퇴비를 만드는 기술 발달하지 못해/ 계속농사 짓기 어려움

500.00  삼국의 관등제 (고/백/신) (14/16/17) / 지증왕 주군제도 실시/ 순장금지 / 우경실시

500.00  삼국의 광역 지방행정 단위 (5부/5방/5주)(욕살/방령/군주)(통일신라 총관)

500.00  연가 7년명 금동여래 입상 (6세기 고구려 입상)

500.00  웅진시기 벽돌무덤(터널형 벽돌무덤)에도 벽과 천장에 사신도등을 그림

500.00  철제농기구(낫 괭이 따비)가 널리 사용됨(6세기에 이르러 널리 사용됨)

503.00  영일냉수리비 (지증왕으로 추정됨/ 재산상속문제 결정/ 공인된 신라비석중 최고)

503.00  포항중성리비 (영일냉수리비 보다도 연대빠름/ 아직 공인되지 않음)(재산 소송 판결)

514.00  불교식 왕명시대 (법흥왕~ 진덕여왕 654)(법흥왕 연호 건원!!!!!!)

516.00  병부령(병부의 장관)의 설치/ 1년 후 병부의 설치 (법흥왕)

520.00  법흥왕의 업적 (병부와 상대등마련/ 17관등 정비/ 골품형성/ 연호 건원 사용)

522.00  금관가야가 신라에 투항한 상황에서 대가야와 안라가야의 이원체제로 분열됨

522.00  대가야왕 신라 왕족과 결혼 (대가야 이뇌왕이 신라에 청혼 법흥왕이 보내주어서)

524.00  봉평비 법흥왕대 동해안 방면 북진/ 중대한 사건(화재)/ 처벌 재발방지

524.00  울진봉평비 (귀족회의 의장인 상대등이 별도로 설치안됨/ 왕이 회의 구성원 참여)

524.00  울진봉평비 (법흥왕/ 율령의 반포/ 지방체제와 관직명/ 지방민 차별대우 노인법)

531.00  상대등 설치 (법흥왕)(화백회의 직접 정책결정 -> 국왕에 건의하는 정도로 제한됨)

536.00  영천청제비 (법흥왕/ 제방수리/ 역역 동원)

538.00  22담로가 5방-군-성 체제로 전환됨

538.00  백제의 사비성천도 국호 남부여 개칭 (작고 세련된 무덤 축조)

538.00  웅진에서 사비로 천도될 때에 왕비족의 교체만 일어남 

540.00  삼국의 불교 정리하자면 왕실이 주도적 역할을 했다 (맞음) 삼국 모두 왕실이 먼저 받아 들였다 (틀림)

540.00  삼국의 불교는 왕실에서 먼저 받아들여지고 점차 민간에 전파 (이건 아님!! 신라는 민간에서 전도시작)

540.00  성왕은 담로제를 새로이 정비함 (담로제 : 한성시대부터 마련되어 웅진때도 실시함)

540.00  성왕은 중앙관청을 22부로 정비 및 수도 5부 지방을 5방으로 정비

540.00  신라 불교 수용하는데 많은 사상적 갈등// 삼국이 불교를 받아들이는데 선봉적 역할은 왕실, 신라 더 뚜렷

544.00  사정부 (진흥왕)/좌이방부 (진덕여왕 651)/우이방부 외사정 설치(문무왕, 주와 군현에 파견, 소경엔 노노!)

550.00  가야출신 (중원경으로 옮김/ 우륵(가야금) 강수 김생(명필))

550.00  각간=이벌찬=신라의수상 (후에는 중시(시중)으로 변화함)

550.00  고구려 혜자 (쇼토쿠 태자의 스승) 

550.00  대대로 (왕이 임명하지 못하고 5부에서 대표자를 선거/ 불만시 상쟁을 벌임)

550.00  마운령비 (유교의 왕도사상 빌려다가 진흥왕의 업적 찬양하는 내용/ 유교의 하늘)

550.00  백제 노리사치계 (불교) 아좌태자 (쇼토쿠태자의 초상)

550.00  중위제 (4중아찬/9중나마 : 6두품 아찬까지 5두품 나마 까지)(자/비/청/황)

550.00  진흥왕 (신주(서울 한강이남지역)의 설치 후에 한산주로 변경)(비열흘주(동북면))

550.00  진흥왕대 이르면 점령주민을 노인으로 보지않고 백성으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발전

551.00  단양적성비 (진흥왕 직접가지 않음/ 적성공략의 공/ 야이차 포상)

551.00  단양적성비/북한산비(555)/창녕비(561)/대가야정복(562)/황초령 마운령비(568)

551.00  혜량 (고구려 승려/ 신라에 가서 국통이 되어 교단을 조직함)(담징이 교단을 정리했다 = 틀림!!!)

552.00  성왕 떄 노리사치계가 불경과 불상을 전함 (성왕 대 겸익 등용)

552.00  신흥 돌궐이 유연을 격파하고 북방의 강자로 등장/ 고구려와 충돌/ 신라와 밀약

554.00  백제는 가야와 연맹하여 신라를 공략하였다 (틀림 : 공략하다 = 공격하여 점령하다)

555.00  북한산비 (김정희 발견)(한강하류 진출) 마운령비 (최남선) 황초령비 (윤정현)

574.00  황룡사의 장륙존상 (신라 삼보의 하나)// 황룡사는 진흥왕/ 황룡사 9층 목탑은 선덕여왕!!

579.00  진지왕은 진흥왕 뒤를 이어 왕위에 오름/ 재위 4년만에/ 품행을 이유로 화백의 결의에 의해 왕위쫒겨남

579.00  혜성가 (융천사 왜군의 내침 및 혜성의 출현 혜성을 물리침 내용)

598.00  고구려 수나라 요서지방 선제공격

600.00  강서대묘(사신도)무용총(무용 수렵 거문고)무령왕릉(벽돌무덤-벽화없음)송산리6호분(사신도 일월도)

600.00  개황력 개황록은 가야멸망 직후 가야유민에 의해 쓰인 책

600.00  경주 배리 석불 입상 (삼국시대의 신라 불상)

600.00  고구려 문화 (중국문화에 대한 비판력이 강하고 개성있고 정열넘침)(각저총 씨름도 귀족 별자리)

600.00  금동대향로 (봉황모습의 꼭지/ 봉래산 양각된 뚜껑/ 연꽃잎 장식된 몸통/ 용으로 이루어진 받침)

600.00  금동대향로 (부여 능산리 절터/ 7세기 초)(!불교세계(현화장)!+도교세계(신선))

600.00  도교와 도가의 관계 (도교는 종교/ 도가는 철학(무위자연 등))

600.00  도교적 유물유적 (무령왕릉(송산리) 지석매지권/ 혜성가(도술)/ 국선풍류도/ 12간지 안압지)

600.00  무왕 (전륜성왕 자처/ 익산 지방 미륵사 중건/ 천도계획)

600.00  미륵사지석탑 (최고 최대/ 목조탑파 양식)

600.00  반가사유상 (특히 7세기에 많이 만들어 짐)

600.00  백제 미륵사지 석탑과 신라 분황사 탑은 각각 목탑과 전탑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맞는지문)

600.00  백제의 벽화 송산리 벽돌무덤(송산리 6호분)과 능산리 돌방무덤/ 사신도 그려짐/ 패기찬 아님 부드러움

600.00  사비 : 백제금동대향로 정림사지 5층석탑/ 웅진 : 무령왕릉지석//// 무령왕릉 석실분 아님!!! 벽돌분

600.00  삼국시대 문화 (일반민중 사이에서는 회소곡 같은 노동요가 유행하기도 하였다)

600.00  승랑 (장수왕후기/고구려불교 삼론종 발달/ 승랑은 중국삼론종의 3대조가 됨)

600.00  신라는 조선술과 축제술 도자기제조술 의약 불상 등을 일본에 전파

600.00  신라미술 (초기에는 고구려의 영향/ 뒤에는 백제의 영향이 컸음)

600.00  온달은 한강 유역을 되찾기 위해 출전하였다가 아차산성에서 전사함

600.00  왕산악 (고구려/ 칠현금 개량하여 현학금 만들었다)

600.00  자장 (선덕여왕/ 통도사 창건/ 교단 위계질서 잡음/ 대국통/ 계율종포교/ 진골/ 유학)(선덕여왕 첨성대)

600.00  현무도 (사신도(죽은자의 사후세계 지켜줌) 중 북쪽 상징/ 북방의 강자 고구려 상징)

600.00  혜자 (쇼토쿠 태자의 스승)/ 혜관 (고구려 승려 일본 삼론종의 시조)

600.00  화백제도 (각 집단의 부정방지기능) 화랑제도 (중간관리자 배출기능)

603.00  서산마애삼존불(백제의미소, 가운데 본존여래, 좌우에 협시보살(관음보살 아님))(7세기 초 추정)

603.00  태안마애삼존불(특이함: 가운데 작은, 양 옆 큰)(최초의 마애불로 추정)(항해안전)(금동용봉대향로 백제말)

608.00  원광의 걸사표 (진평왕)(왕토사상의 출현)(수나라에 군사를 청하는 걸사표)

608.00  진평왕(진종설을 통해 스스로 백정이라함 부인을 마야부인이라 함)

610.00  고구려 담징 (종이 먹 맷돌제조기술, 유교의 5경도 가르침) 혜관 (일본 삼론종의 시조)

611.00  남산신성비, 임신서기석 (진평왕)

612.00  살수대첩/ 헤지라 원년 622

622.00  헤지라 원년/ 현장의 대당서역기 (629)

634.00  분황사 모전석탑 (진성여왕)(석탑이다 전탑아님!!!)(벽돌양식을 모방한 석탑)

645.00  안시성싸움 (백제멸망 이전)/ 일본의 다이카 개신

650.00  사택지적비 (백제 의자왕 시절에 만듦)// 의자왕 (신라의 40여성과 당항성을 되찾음, 고구려 도움없이)

660.00  웅진도독부-계림도독부663-안동도호부668-(사비성함락 소부리주설치 671)- 매초성675- 기벌포676

663.00  백촌강(동진강) 백제부흥운동 왜군 지원/ 665 지수신 임존성 함락/ 실패

670.00  고구려부흥 검모잠은 안승을 왕으로 받들고, 신라는 안승을 금마저(익산시)에 있게하며 보덕왕으로

670.00  대웅전 (석가모니불) 무량수전(아미타불) 용화전=미륵전(미륵보살)

670.00  밀교신앙 (약사신앙/ 사천왕신앙/ 하대에 더욱유행/ 서민층까지 불교확산 기여)

670.00  법상종 (백제 및 고구려 유민에게 연결되어 후기 신라 불교계의 지역적 분화를 가져옴)

670.00  보덕국 (위치 익산시)(안승이 금마저에 고구려 유민 규합하여 설립)

670.00  원측 (규기의 자은학파와 더불어 유식불교와 쌍벽을 이룬 서명학파의 비조)(해심밀경소)

670.00  원측 (현장에게 신유식학 배워/ 법상종 승려로 확고한 지위/ 티벳불교에 지대한 영향을 줌)

670.00  원효 (법성종과 화엄사상 바탕으로 교학불교 종파 통합하여 법성종(해동종) 세움)

670.00  원효 (삼론종 발전시킴 : 혜공으로부터 삼론학 진수배움/ 초장관문 저술/ 삼론경발전)

670.00  원효 (아미타 신앙을 전도하여 불교 대중화의 길 열었고)(대승기신론소 금강삼매경론)

670.00  의상 (문무왕이 경주에 도성 쌓으려 하자 민심들어 만류함)(화엄사상 뿐 아니라 관음신앙 이끎)

670.00  의상 (원융사상 : 모든주민의 일체감 -> 통일직후 신라사회 통합에 기여)

670.00  의상 (원융사상 : 일안에 일체요 다 안에 일이며 일이 곧 일체요 ~~~)(화엄일승법계도)

670.00  의상 (화엄종단에서 아미타신앙과 함께 "현세의 고난 받고자 하는 관음신앙"을 이끔)

670.00  진표 (경덕왕 떄 / 미륵불 중시/ 백제계 유민/ 김제의 금산사/ 견훤까지 이어짐)

670.00  진표 (법상종/ 점찰계법(점을쳐서 업보관찰 참회)/ 점찰로서 참회/ 계율적 반성)

674.00  안압지 임해전 (백제의 궁남지 망해정 착안)(세 섬 = 삼신산 = 선인과 같이 불로장생)

679.00  사천왕사 (당의 침략 부처의 힘으로 저지)(문무왕)

680.00  공장부에서 전국의 수공업 관장함/ 신문왕/ 예작부와 공작부 둬서 수공업 장려함

680.00  안승의 조카뻘 되는 대문이 금마저에서~ 그 땅을 금마군으로 삼았다 (신문왕때)

682.00  감은사 - 문무대왕암 - 신문왕 대(위화부령 두명 두어 선거사무)(비로소 9주 갖추어짐)

682.00  감은사 (불교의 힘으로 일본군 침략 격퇴)(신문왕) - 감은사지 3층석탑 축조

695.00  서시와 남시 탄생(효소왕) 동시는 지증왕대 부터 존재 (북시없음!!!)

698.00  대조영은 처음에 진국이라 칭했다가 당으로부터 발해 군왕에 봉해진 다음 발해라는 국호 사용 시작

698.00  발해건국 (신라지배와 무관하게 건국함, 요서지방에서 거란족 이진충의 난이 일어났고, 이를 이용하여)

700.00  9서당 10정은 민족융합책이다? (10정은 관련 없음/ 지방반란에 효과적 대처위함)

700.00  계루부고씨 모두가 진골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안승계열만 진골로 흡수

700.00  골품제 (부의 장관인 영에는 대아찬 이상의 진골귀족만)(3두품 이하는 소멸됨)(하대엔 4두품도 평민화)

700.00  골품제 (부의 차관인 경은 나마~아찬으로 5두품까지 가능)(경위17 외위11)(5 대나마까지)(4 대사까지)

700.00  관음(현세) 정토(내세)(아미타)(미륵)/ 9서당과 더불어 5소경도 민족융합정책임

700.00  국학 (공통필수 논어와 효경/태학으로 이어짐/5경 철학,역사,문학,산학)(신문왕떄 설립)

700.00  국학 경덕왕 떄 태학감으로 고쳐지고// 논어와 효경을 필수과목으로 정함

700.00  국학 입학자격 (12등급에 해당하는 대사 이하의 하급 귀족자제에게 인정됨)

700.00  국학 졸업 이후 대나마 나마등의 관직 부여

700.00  김교각 (지장보살의 화신) 녹읍(관직복무대가) 식읍(공로대가)// 식읍은 조선초기때 까지 존속되었다!

700.00  대조영/ 대무예/ 대흠무/ 대인수 (태조 고왕/무왕/문왕/선왕) (성덕왕:정전)(경덕왕:녹읍부활)

700.00  대체적으로 유교는 골품제도와 이를 옹호하는 불교에 대항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700.00  무왕(인안) 문왕(대흥) : 무인! 연상하라

700.00  미륵신앙 (통일전 : 지배계급의 권위, 미륵반가상/ 통일후 : 생활의 일부가 됨)

700.00  민정문서 (관모답(관유지), 내시령답, 촌주위답을 공동경작함 (연수유답쓰는대가로))

700.00  민정문서 (관모답, 내시령답 등은 소작되었다 틀림 -> 공동경작 되었다!! 맞음)

700.00  민정문서 (내시령답(관료전) 관모전답(관청경비) 촌주위답(촌주가 소유한 토지, 직역의 대가로))

700.00  민정문서 (서원경/ 촌주에 의해 3년마다 보고/ 면적적시)(촌락 전출 시 관아의 허락요)

700.00  민정문서 (통일신라는 매 촌락마다 촌주가 있어서 ~ 틀림!)(촌주는 4개 자연촌 중 한곳에만 있었음!)

700.00  민정문서 (호구, 우마는 그 증감이 기록됨/ 연수유전,답은 증감 기록 전무)

700.00  민정문서 (호의 등급으로 농민들 생활수준 판단가능/ 인구수=호의 재력인 시대)

700.00  민정문서(혈연 중심의 촌주 지배 체제)(각 호의 정남에 의해 아님!!, 촌주가 자연촌 단위로 작성)

700.00  발해 (15부는 지방행정의 중심 장관은 도독/ 62주 장관은 자사/ 현의 장관은 현승)

700.00  발해 (무왕 동생 대문예로 하여금 흑수말갈을 치려고 하였다~ 당에 투항~ 장문휴 등주공격)

700.00  발해 (문적원은 도서와 문서 관리 기관, 주자감이 최고학부임!)(수도이전 의미 : 국력의 신장에서 연유)

700.00  발해 동경 (이불병좌석불)

700.00  발해 동모산 (정혜공주 묘(모줄임,벽화없음,도교요소))

700.00  발해 무덤 (벽돌무덤 당의영향/ 벽은 벽돌 천장은 돌로고임(고구려영향)/ 정효공주묘)

700.00  발해 무덤 (석실봉토묘는 고구려후기 양식 정혜공주묘가 대표적)

700.00  발해 무덤 (육정산 고분군 : 발해 초기 지배층의 무덤들이 있음, 고구려계 양식인 석실봉토분)

700.00  발해 상경 (돌사자상/ 온돌장치/주작대로)(흑룡강성)

700.00  발해 수도이전 5대 성왕(대화여) 떄 다시 상경으로 환도하여 멸망때까지 불변 (선왕대 아님!!)

700.00  발해 수도이전 문왕대 돈화-중경-상경-동경 순으로 옮김 이는 국력신장에 연유한 바다)

700.00  발해 인구 (촌락의 수령이 고구려인인지 말갈인인지 여러학설/교과서 말갈인)

700.00  발해 중경 (정효공주묘(모줄임,벽화있음,도교요소))(길림성 장백현)(영광탑)

700.00  발해 중앙 (문적원 도서관리)(주자감:경대부이상의 맏아들)

700.00  발해 중앙군 10위! (9위 아님!)

700.00  발해 지방 (부의 장관 도독/ 주의 장관 자사/ 현의 장관 현승)

700.00  발해 지방 일원적 통치 틀림!(추장휘하 자치생활 지방관 간접통제 + 지방관 직접통제/ !통치의 이중성!)

700.00  발해교통(서경압록부-조공도)(동경용원부-일본도)(남경남해부-신라도)(중경<>거란)

700.00  발해문화 (동국통감은 발해사 인정안함/ 남북국시대(유득공/김정호의 대동지지))

700.00  발해문화 (와당의 연화무늬/ 연호 천통/ 진국 대진국/ 수도이전순서 : 중상동상)

700.00  발해문화 (이불병좌상/서경과 동경지역/ 석가모니불 다보불 병좌/ 고구려후기전통)

700.00  발해문화 (정혜공주의 묘지에 3년상 치렀던 사실 확인/ 고구려 백제에 통용되던장례)

700.00  발해악은 일본에 전해졌고 송나라 악기제작에 영향을 줌

700.00  발해와 일본의 관계(동경용원부) 당과 관계(서경 압록부, 8세기 후반이후 친선관계)

700.00  발해의 관부 (충인의지예신/ 사빈시(외국사절접대))

700.00  발해의 단기고사 대조영의 아우 대야발이 지었다고 함

700.00  소경제 (지증왕 이후 설치)("군사" 행정상의 요지에 설치)

700.00  식읍 (식읍이라하더라도 사영지가 아니어서 상속이 허용되지 않고 국가의 행정체제 안에 존재하였다)

700.00  심상 (통일신라 승려/ 일본 화엄종의 초조가 됨, 백제가 화엄종 전해줬다 아님!!)

700.00  연수유답 (연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 이름에서 왕토사상)

700.00  정토신앙이 유행하는 것과 정토종의 성립은 다른말 (정토종을 통해 불교 대중화 맞는지문으로 출제한적)

700.00  통일신라 예술 (건축 주종 종사자들 나마 관직 받음/ 가야금 + 여러악기연주)

700.00  통일신라의 왕경부대 (시위부(궁성숙위 경호 담당), 9서당)

700.00  팔관회 (제천행사/ 도교의 초제/ 불교행사가 합쳐진 종합적 행사)

700.00  현존하는 향가 중에는 유교적 성격을 강하게 띠는 것이 다수를 점한다 (틀림: 향가는 국민문학이야!)

700.00  혜초 (밀교를 연구(화엄학 아님!))(밀교 대일경 금강정경 부처진리 직설 은밀하게)

704.00  김대문 (신라하대 사람 아님!!, 성덕왕, 한산주 도독, 계림잡전(신라역사 야사로 기록) 화랑세기 고승전 등

717.00  성덕왕(신문왕 아님!) 공자와 그 제자들의 화상을 가져다 국학에 안치함/ 경덕왕 국학에 박사와 조교 둠

720.00  법주사 쌍사자 석등 (신라중대 성덕왕떄)(통일신라 문화재!)// 성덕왕(천문기관 누각전)

721.00  성덕대왕 신종 (봉덕사 종 에밀레종, 야연이 합금된 청동으로 만듦)(경덕왕 ~ 혜공왕 : 중대에 완성됨!)

721.00  신라는 발해 무왕의 영토확장 경계하면서 성덕왕때 강릉지방에 장성을 쌓기도 함

721.00  정전 (성덕왕때 시작/연수유전 연수유답/ 국유지도 포함)(국가의 역역 파악 가능해짐)(균전제에 입각)

747.00  신라에서는 대체로 시중 - 병부령 - 상대등으로 진급하는 것이 통례 (제1관등 이벌찬 = 중시 아님!!)

747.00  집사부 중시(경덕왕때 시중)의 중요업무는 기밀사무의 관장인만큼 귀족대변자보다 국왕행정대변자

750.00  구례 화엄사 4사자 3층석탑 (다보탑과 비슷한 시기/ 8세기 중엽으로 추정)

750.00  다보탑 석가탑 의미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땅에서 솟아났다는 불교적 세계관)

750.00  발해 문왕은 불교적 성왕을 자처했다고 한다/ 문왕대 신라도(함흥에서 덕원) 설치

750.00  석굴암 (전실: 땅, 네모 / 후실 : 하늘, 둥근모양)(전땅크)(인공으로 축조한 석굴사원, 자연석굴 아님!)

751.00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경덕왕 시기)(석가탑에서 출토/ 현존 최고 목판인쇄본)(석굴암도 경덕왕)

755.00  당의 안사의 난(755)/ 신성로마황제대관(962)

760.00  도솔가 (해가 둘로 나타남, 왜구의 침입/ 월명사)

762.00  발해 대흠무(문왕) 시기에 안사의난을 계기로 신라와 대등하게 국왕으로 인정받음

768.00  대공의 난 (혜공왕)

780.00  문왕시기 정혜공주묘지 및 정효공주 묘지 완성

788.00  독서삼품과 (원성왕/ 독서의 성적에 따라 3등급 나누어 인재등용)(국학 교육과정과 연계)

788.00  독서삼품과는 골품 위주의 관리 등용을 지양하고 유교적 교양에 따른 능력주의 관리선발 시도 (맞는지문)

800.00  9세기 초엽/ 일본정부는 신라상인 무역활동 관리하기 위한 대책마련, 일부 백성 파산하는 것에 대한 금령

800.00  군진설치 (패강진 대동강/ 당성진 남양)

800.00  도의 (교종과 연관된 북종선 보다 도의의 남종선이 선문9산으로 확대됨)

800.00  발해 (대체로 모든 왕들이 하나의 연호와 시호 독자적 사용함)

800.00  발해 (정당성 왕명집행기관) (대당 수출품 : 모피 인삼 불상 자기 금은세공)

800.00  발해 (정혜 : 굴식돌방 정효 : 벽돌무덤) (솔빈부의 말 주요 대당수출품)

800.00  발해 대인수(선왕) 시기에 말갈족(거란 아님!) 복속 요동(요서 아님!) 지역에 대한 지배권 획득

800.00  발해 대인수(선왕) 시기에 최대판도(흑룡강 송화강~대동강 원산만)/ 지방제도 완비)/중앙제도는 문왕대

800.00  발해 대인수(선왕)가 지위하면서 왕의 계보가 대조영의 직계에서, 그의 동생 대야발의 직계로 바뀜

800.00  신라소 (행정) 신라관 (여관) 신라원 (사원)

800.00  신라하대 6두품 세력이 중대에 비해 활약제한은 사실이나 정치참여기회는 가짐

800.00  신라하대 6두품세력의 몰락이 아님/ 오히려 6두품 세력의 성장이 도드라짐

822.00  김헌창의 난 (헌덕왕)(무열왕계 후손의 저항)(웅주 근거 반란 , 국호 장안, 연호 경운)

828.00  장보고의 청해진 설치 (9세기 초반!!)

840.00  장보고 (청해진대사취임/ 법화원개장/ 매물사(우두머리)파견, 회역사(일본사절단))

846.00  장보고의 난 (청해진 851년에 해체)

888.00  삼대목(작자 위홍과 대구/ 삼국사기에 전하는 최초의 향가집/ 진성여왕/ 지금 전하지 않음)

894.00  최치원 진성여왕에게 시무상소올려 정치개혁 요구, 아찬에 등용됨

896.00  붉은 바지를 입은 적고적이라는 반란군 서남해지방 폭동 경주외곽 진출

900.00  견훤은 완산주를 근거로 후백제 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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